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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18

이순신의 금토패문-일본의 라인사태

요즘 뉴스를 보면, 계속해서 일본에서 라인사태가 일어났습니다.이 로고를 본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바로 네이버 라인입니다.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네이버재팬에서 만든 메신저입니다. 일본의 전 국민이 라인을 사용하고 있고, 동남아도 라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일본정부에서 고객유출사건으로 네이버에 지분을 매각하라고 압박하라고 했습니다. 제목은 이순신의 금토패문입니다.왜 제목이 금토패문이냐?바로 이런 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토벌을 금하는 패문을 명나라에서 조선의 장수들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이 때문에 반박을 하게 됩니다. 명나라는 벽제관전투에서 패배하고  왜와 교섭을 추진합니다.명나라에서는 심유경, 왜에서는 고니시 유키나..

몽진을 선택한 두 군주

오늘의 주제는 몽진을 선택 한 두 군주입니다. 바로 고려의 현종 그리고 조선의 선조입니다. 1. 2차 요여전쟁에서 끝까지 항전을 선택하며 몽진을 선택한 고려의 현종 2차 여요전쟁, 드라마로 두 편이 제작되었습니다. 천추태후, 고려거란전쟁이 있습니다. 거란(요나라)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을 하였습니다. 당시 최전방 흥화진을 함락을 못 시키고, 계속해서 개경으로 진군을 하였습니다. 거란군이 남쪽으로 진격을 하지만, 함락을 못 시킨 고려의 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흥화진, 통주성, 서경성을 함락을 못 시키고 남한을 하였죠. 결국 흥화진의 양규장군은 곽주성을 탈환하고, 후방을 계속해서 유린을 하였고, 거란군은 개경에 도착하지만, 이미 고려 현종은 강감찬의 몽진을 받아들이고 나주까지 몽진을 하..

영화 한산, 일본군이 부르는 북카이센,메구라후네는?

한국사 3대 대첩-한산도대첩 3번째 대첩 조선대에 임진왜란 당시 일어난 한산도해전입니다. 조선과 일본의 상황 조선-건국이후 사대주의와 유교사상으로 정립된 국가로서 건국 초기에 세종대에 일어난 이종무 의대 마도 정 malrrr.tistory.com 안녕하세요. 요즘 영화 한산이 흥행 중이며, 지금까지 700만 명이 봤다고 뉴스에도 나옵니다. 영화 한산은, 영화 명량의 후속작이며, 한산도대첩을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제 블로그의 한국사3대 대첩으로 한산도대첩도 있고, 이순신 장군이 세 번째 출장으로 글이 있습니다. 한산을 보신 분들이라면, 일본군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북카이센, 메구라부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 단어들은 무엇인지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한산도대첩은 위에 링크를 가시면 자세하게..

명량의 다음작품 "한산: 용의 출현" 2022년7월27일 개봉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영화화한 명량에 이은 한산:용의 출현이 곧 개봉한다는 소식입니다. 최근 범죄도시2가 천만영화가 되었는데, 명량의 후속작인 한산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한산도해전은 이순신의 학익진 전략이 두드러지는 전술로 일본군을 유인해서 바다에서 학인진을 펼치고 세우는걸로 유명합니다. https://malrrr.tistory.com/entry/%ED%95%9C%EA%B5%AD%EC%82%AC-3%EB%8C%80-%EB%8C%80%EC%B2%A9-%ED%95%9C%EC%82%B0%EB%8F%84%EB%8C%80%EC%B2%A9 한국사 3대 대첩-한산도대첩 3번째 대첩 조선대에 임진왜란 당시 일어난 한산도해전입니다. 조선과 일본의 상황 조선-건국이후 사대주의와 유교사상으로 정립된 국가로서 건국 초기에 세종..

개인 일상 2022.07.02

이순신 "6진 녹둔도 전투"

오늘은 이순신이 수군절도사 전라좌도수사 되기 전에 6진에 함경도 조산보 만호로 부임되서 최전방에서 여진족이랑 싸운 전투를 소개하겠습니다. 이순신은 남쪽에 전라좌수사가 되기전에 여러 관직에 종사했고, 그러다가 함경도에 조산보 만호로 부임이 됩니다. 이는 두만강 최전선이기, 여진족과 계속 대치 중인 전략적 요충지에 부임이 됩니다. 녹둔도는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베이징조약때문에 러시아의 영토가 되어버렸습니다. 힘이 없던 조선의 땅을 점령한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 싫어요 다시 당시의 역사로 가봅시다. 조산보 만호 이순신은, 북병사 이일에게 계속 병력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북병사 이일은 이순신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결국 여진족이 녹둔도를 침입하게 됩니다. 당시에 명나라는 만력제의 의해 모든게..

도요토미의 죽음, 그리고 일본군의 철군, 순천 왜교성 전투

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번에는 도요토미가 사망하여 일본군은 철수를 하게 됩니다. 그중 왜교성 전투입니다. 순천 왜교성 전투 1598년 9월 20일 ~ 1598년 10월 7일 1598년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을 하게 됩니다. 조선의 주둔 중인 일본군은 모두 철수 명령을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조선, 명군은 오히려 도망을 못 가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게 됩니다. 일단 울산왜성에 주둔 중인 가토 기요마사는 동로군이 공격합니다. 사천왜성에 주둔 중인 시마즈 요시히로는 중로군 순천왜성의 주둔중인 고니시 유키나가 군은 서로군 공격하도록 전략을 구사합..

조명연합군 절이도 해전

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번엔 명령해전 이후 처음으로 조명수군 연합군이 펼친 절이도 해전입니다. 절이도 해전 1598년 8월 20일(음력 7월 19일) 위에 조명연합군이 만들어 졌지만, 명나라는 뒤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싸운건 조선수군입니다. 음력 7월 19일 일본 함대가 절이도 지역으로 침범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출동을 합니다. 일본군은 도도 다카도라, 카토 요시아키가 출전하였고 일본 전선은 약 100여 척입니다. 도도 다카도라는 이순신에게 많이 패배를 하였죠. 명량해전 이후 약 10개월 만에 전투였습니다. 조선수군도 판옥선 13척에서 85척까지 늘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기적을 일으킨 명전해전

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번에는 어란포 해전, 벽파진 해전, 명량 해전을 소개합니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수군을 재건하고자 떠나게 됩니다. 일단 수군 패잔병들을 모으게 됩니다. 그리고 경상우사서 배설이 칠천량 해전 당시 탈출한 10척을 되찾게 되고 또 2척을 회수하고 김억추가 명령해전을 앞두고 1척을 가지게 되어 총 13척의 판옥선을 구축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정에서는 수군 폐지하고자 하였지만, 이순신은 수군폐지론을 장계를 올립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조선 수군 뼈아픔 패배 "칠천량 해전"

오늘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밀어내고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패배, 칠천량 해전 입니다. 현 거제도 인근 칠천도 칠천량 해전 1597년 8월 27일(음력 7월 15일) 임진년에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해서 다대포전투부터 장문포 해전까지 3년을 조명연합과 일본군이 계속 싸웁니다. 그리고 강화교섭이 결렬되자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 선봉대가 부산을 재침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유재란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하삼도를 먼저 점령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삼도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를 뜻합니다. 이때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재침이 있을것이라고 정보를 줍니다. 그 정보는 조선 조정로 들어가게 되고, 이순신은 일본 선봉군이 도착하기 전에 격침을 하라는 명이 하달됩니다. 하지..

이순신의 정유재란 이전에 마지막 출전 "장문포 해전"

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현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장문포 해전 1594년 11월 12일(음력 10월 1일) ~ 12월 29일(음력 11월 18일) 음력 10월1일 조선 수군 50여 척, 일본 수군 117척이 서로 대치를 했습니다. 10월1일 조선 수군은 새벽에 거제도 장문도 앞바다에 머물다가 영등포로 들어가 전투를 걸었습니다. 일본군은 바다에서 승산이 없기에 항전을 안 합니다. 음력 10월4일 의병장 곽재우,김덕령과 함께 수륙합동작전을 전개 하고 싸움을 걸었습니다. 조선수군은 함포사격을 하여 함선2척을 격파하였고, 일본군은 이 역시 교전에 응하지 않고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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