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4개월간의 투자 복기 — 1월부터 4월 말까지, 내 계좌에 무슨 일이 있었나

2026년 1월 2일부터 5월 초까지, 약 4개월간의 실전 투자 기록을 복기합니다. 어떤 판단을 했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 수익률과 매매 이유를 함께 공개합니다.

 


4개월 성과 요약

먼저 결과부터 말하겠습니다.

  • 주력계좌: 4개월간 수익률 약 +65%
  • 원금 420만 원 회복계좌: 4개월간 수익률 약 +93% (원금 완전 회복 달성)

4개월 만에 이런 수익률이 나온 데는 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시장 흐름을 읽고 빠르게 대응한 판단들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KODEX AI반도체는 단일 종목 수익률 **+103%**를 기록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월별로 어떤 판단을 내렸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복기해 보겠습니다.


출발점 — 1월 2일 기준

2번 계좌

1월 2일, 2번 계좌는 작년 12월부터 종목을 탐색한 끝에 4개 종목으로 구성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구성 종목

핵심 성장주 KODEX AI반도체
테마 ETF PLUS 우주항공&UAM
배당/방어 커버드콜 ETF
금융섹터 KODEX 증권

반도체를 중심에 두되, 우주항공·증권·커버드콜로 분산한 구성이었습니다.

원금 420만 원 복귀 계좌

주식을 처음 시작할 때, 누군가의 추천주를 믿고 매수를 했다가, 결국 -50%까지 보고, 과감하게 걷어내고
2025년 12월 23일에 TIGER 반도체TOP10PLUS 우주항공&UAM 두 종목만 넣고, 이후 단 한 번도 매매 없이 5월까지 보유했습니다.


1월 — 첫 번째 리밸런싱

1월 중순, 시장을 지켜보면서 첫 번째 조정을 했습니다.

매도한 종목:

  • KODEX 증권 → 금융섹터의 단기 모멘텀이 약해졌다고 판단
  • PLUS 우주항공&UAM → 원금 420만 원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정리 (3번 계좌에서 계속 보유 중이므로 중복 제거)

매수한 종목:

  • TIGER 휴머노이드 → 당시 로봇/휴머노이드 테마가 부상하면서 단기 모멘텀을 노린 매수
  • 커버드콜 추가 매수 → 방어 비중 강화

이 시점의 판단 핵심은 "확신 없는 테마는 정리하고, 반도체 중심으로 집중도를 높이자"였습니다.


2월 — 섹터 로테이션 시도

2월은 1월에 너무 많이 올른 결과 조금 소극적으로 매도, 매수를 하였습니다

매도:

  • TIGER 휴머노이드 → CES모멘텀이 끝나기에 매도(당시 현대차, 그 외 로봇섹터 많이 올라갔고 팔 시기가 돼서 매도)

매수:

  • WON 초대형IB&금융지주 → 증권주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었고, 은행과 증권을 통합한 ETF가 새로 출시되면서 매수. 기존 KODEX 증권은 1월에 팔았지만, 금융섹터 자체는 아직 살아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2월 말, 큰 결정을 내립니다. ETF 위주에서 **개별종목(반도체·원전주)**으로 갈아탔습니다. 더 높은 수익률을 노린 공격적인 전환이었습니다.

이 판단이 결과적으로 3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3월 — 이란 이슈, 그리고 위기 대응

3월, 이란-미국 갈등이 터지면서 코스피가 단기간에 8~12% 급락합니다.

이 시점에서 포트폴리오 상황은 이랬습니다:

  • KODEX AI반도체: 이미 수익이 상당히 쌓여있었고, 국내 반도체 수출 지표가 계속 좋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건 지정학 리스크일 뿐 반도체 펀더멘털과는 무관하다고 판단해서 매도하지 않고 홀딩했습니다.
  • 개별종목(반도체·원전): 2월 말에 갈아탄 개별종목들은 급락 충격이 더 컸습니다. 더 큰 손실이 나기 전에 손절하고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이 판단이 이 4개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AI반도체 ETF는 홀딩, 개별종목은 손절 — 확신이 있는 포지션과 없는 포지션을 구분한 것입니다.

현금 확보 후 새로 편입한 종목이 KODEX 신재생에너지액티브입니다. ESS·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섹터가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급락장에서 저가 매수 기회로 본 것입니다.

3월 이후 포트폴리오: 반도체 ETF + 커버드콜 + 신재생에너지


4월 — 포트 안정화와 커버드콜 전환

4월에는 공격보다 안정화에 집중했습니다.

  • 신규 상장된 TIGER 반도체TOP10커버드콜액티브 매수 → 반도체 섹터에 대한 확신은 유지하되, 커버드콜 구조로 배당 수입까지 확보하는 전략
  • 기존 커버드콜 수익 실현 → 새 커버드콜로 교체하면서 수익 확정
  • 4월 말 분배락 기준으로 DAISHIN343 AI반도체&인프라액티브 추가 → 분배락 이후 저점 매수

최종적으로 4 종목 체제로 정리되었습니다:

  1. KODEX AI반도체 — 핵심 성장 포지션 (+103%)
  2. TIGER 반도체TOP10커버드콜액티브 — 반도체 + 배당
  3. KODEX 신재생에너지액티브 — 중장기 테마
  4. DAISHIN343 AI반도체&인프라액티브 — AI 인프라 확장 베팅

아무것도 안 한 420만 원 원금복귀 계좌 — 아무것도 안 한 계좌의 수익률이 +92%

3번 계좌는 대조적입니다. 12월 23일에 TIGER 반도체TOP10PLUS 우주항공&UAM을 매수한 뒤, 단 한 번의 매매도 없이 5월까지 보유했습니다.

그 결과 수익률 약 +92%.

2번 계좌에서 수많은 매매 판단을 내린 것과 비교하면, "좋은 종목을 사서 들고 있는 것"의 힘을 보여주는 계좌입니다. 물론 반도체와 우주항공이라는 섹터 선택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4개월을 돌아보며 — 배운 점

1. 확신 있는 포지션은 흔들려도 홀딩한다

3월 급락장에서 AI반도체 ETF를 팔지 않은 판단이 결과적으로 +103% 수익의 핵심이었습니다. 펀더멘털이 변한 게 아니라 지정학 리스크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고, 이런 판단을 내리려면 평소에 해당 섹터를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2. 확신 없는 포지션은 빠르게 정리한다

개별종목 손절은 아쉽지만 올바른 판단이었습니다. 더 버텼다면 손실이 커졌을 수 있고, 현금을 확보한 덕분에 신재생에너지를 저점에서 매수할 수 있었습니다.

3. 안 파는 것도 전략이다

3번 계좌가 증명합니다. 좋은 종목을 골라서 묵혀두는 것, 그것도 훌륭한 투자 전략입니다. 매매를 많이 한다고 수익률이 높아지는 게 아닙니다.

4. 성장 → 커버드콜 전환은 유효하다

4월에 반도체 커버드콜을 편입하면서 "성장으로 원금을 키우고, 커버드콜로 수입을 만든다"는 전략의 첫 단추를 끼웠습니다. 앞으로 이 전환 과정도 블로그에서 계속 기록할 예정입니다.

 


현재 포트폴리오 (5월 초 기준)

주력 계좌의 수익

종목 비중 역할 수익률

KODEX AI반도체 최대 비중 핵심 성장 +103%
TIGER 반도체TOP10커버드콜액티브 중간 비중 성장+배당 +12%
DAISHIN343 AI반도체&인프라액티브 소형 비중 AI 인프라 +7%
KODEX 신재생에너지액티브 소형 비중 중장기 테마 +24%

원금 420만 원 복귀 계좌의 수익

종목 역할 수익률

TIGER 반도체TOP10 반도체 대표 ETF +59%
PLUS 우주항공&UAM 우주항공 테마 +92%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추천하는 글이 아닙니다. 개인 투자자의 실전 기록이며, 모든 투자 판단은 본인의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도 24,25년은 개별종목을 했지만, ETF는 여러 구성종목이 있고, 한 종목이 빠지면 다른 종목들이 방어를 해준다는 성격으로 26년은 ETF위주로 운영을 했습니다.


현재 주력계좌는 투자수익이 +65.30%
원금 420만 원 계좌는 투자수익이 93.93%

5월 5일 기준 코스피 지수 64.61%
코스피 지수대비 확실하게 두 계좌 전부 지수를 이겼습니다.

미래에셋증권에 투자 성과 첨부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주식이란?

주식(Stock)은 쉽게 말해 회사의 지분입니다.

어떤 회사가 사업을 시작하거나 확장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이때 회사는 자신의 소유권을 잘게 쪼개서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데, 이 쪼개진 소유권 한 조각을 **주식(1주)**이라고 합니다.

즉, 주식을 산다는 건 그 회사의 일부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 주식 1주를 샀다면?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회사의 아주 작은 지분을 가진 **주주(株主)**가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주식을 사는 이유

주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시세차익 (매매 차익)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 회사의 주식을 1만 원에 샀는데 회사가 성장해서 주가가 2만 원이 되었다면, 팔았을 때 1만 원의 이익이 생깁니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가 주식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 시세차익입니다.

물론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무작정 사는 것이 아니라 왜 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2. 배당금

회사가 이익을 내면 그 이익의 일부를 주주들에게 나눠주는데, 이것이 배당금입니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을 받을 수 있어서, 배당금을 꾸준히 모으는 전략을 세우는 투자자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매월 배당금을 지급하는 월배당 ETF 상품도 많이 나와 있어서, 배당 투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의 구조 — 어디서 거래하나?

주식은 아무 데서나 사고파는 게 아니라, 거래소라는 공식 시장에서 거래됩니다.

국내 주식시장

한국에는 두 개의 대표 시장이 있습니다.

  • 코스피(KOSPI):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같은 대형 기업들이 상장된 시장입니다. 한국 주식시장의 대표 지수이며, 시가총액 기준으로 규모가 큰 기업들이 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코스닥(KOSDAQ): 에코프로비엠, 알테오젠 같은 중소형·기술 성장주 중심의 시장입니다. 변동성이 더 크지만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들이 많습니다.

해외 주식시장

증권 계좌를 개설하면 해외 주식도 거래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해외 시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 — 나스닥(NASDAQ) / NYSE: 애플, 엔비디아, 테슬라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상장된 세계 최대 시장입니다.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투자하는 해외 시장이기도 합니다.
  • 중국 — 항셍(Hang Seng): 홍콩 증시 기준의 중국 대표 지수입니다.
  • 일본 — 닛케이225(Nikkei 225):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로, 도요타, 소니 같은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외 주식을 거래하려면 원화를 달러, 엔화 등으로 환전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환율 변동에 따라 추가 이익이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주식 투자를 시작하려면?

주식을 사고팔기 위해서는 증권 계좌가 필요합니다.

은행 계좌와는 다릅니다.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같은 증권회사에서 계좌를 개설해야 주식 거래가 가능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앱으로 비대면 개설이 가능하기 때문에, 10분이면 계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계좌를 개설하고 나면 국내 주식(코스피·코스닥)은 바로 거래 가능하고, 해외 주식은 환전 후 거래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핵심 개념 설명

주식 회사의 소유권을 쪼갠 것 (1주 = 지분 한 조각)
수익 방법 시세차익(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 배당금(이익 분배)
국내 시장 코스피(대형주), 코스닥(성장주)
해외 시장 미국(나스닥/NYSE), 중국(항셍), 일본(닛케이225) 등
필요한 것 증권회사 계좌 개설

주식 투자는 "회사의 일부를 소유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이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인 계좌 개설, 종목 선택, 투자 전략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인베스트 아카이브에서는 주식 입문부터 실전 포트폴리오 전략까지 단계별로 다룰 예정이니, 관심 있으시다면 블로그를 구독해주세요.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겐페이 전쟁

1. 막부란 무엇일까?

일본 역사에서 막부(幕府)는 쇼군이 통치하는 군사 정권을 의미합니다. 일본은 오랫동안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일본 역사에서 약 700년 동안 실질적인 권력은 쇼군과 그를 따르는 무사들에게 있었습니다.

시작은 헤이안 시대 후기입니다. 당시 천황과 귀족들의 힘이 약해지자, 지방에서 스스로의 땅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키운 무사들이 점차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라는 무사가 권력을 장악하고, 천황으로부터 쇼군이라는 직위를 받게 됩니다. 원래 쇼군은 '오랑캐를 정벌하는 대장군'을 뜻하는 임시직에 가까웠지만, 요리토모는 이 직위를 바탕으로 수도인 교토가 아닌 자신의 근거지에 새로운 정부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막부의 시작입니다.

이후 일본의 역사는 천황이 상징적인 존재로 남고, 실질적인 통치는 쇼군과 그들의 정부인 막부가 주도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 시기는 무려 700년 가까이 이어지며 일본의 문화와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2.막부의 시발점이 된 겐페이 전쟁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enpei_kassen.jpg#/media/%ED%8C%8C%EC%9D%BC:Genpei_kassen.jpg

 

File:Genpei kassen.jpg - Wikimedia Commons

From Wikimedia Commons, the free media repository

commons.wikimedia.org

 

 "겐페이토키츠" 라고 4개의 가문 귀족가문을 뜻합니다.
모두 천황이랑 혈연관계입니다.
다이카 개신의 공로로 천황에게 이름을 부여받은 후지와라 가문
3개 가문은 모두 천황가와 연결된 가문
미나모토 가문, 헤이케(타이라) 가문, 타치바나 가문 총 4개의 가문입니다.

 

미나모토 가문, 타아라 가문은 왕실에 내전에도 참여을 한 가문입니다.

덴노와 상왕의 정치 다툼인 호겐의 난

니조 천황과 고시라카와 상왕의 내전인 헤이지의난, 헤이지의 난에서 미나모토 가문은 참전했던 사람들은 처형당하거나 유배생활, 혹은 숨어서 살게 됩니다

이렇게 정권을 장악한  타이라노 기요모리(타아라 가문)

황실과 혼인, 정치적 입지 강화, 그에 따른 인사권, 경제권 모두 독점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권력을 장악한 타아라 가문에 불만들이 팽배하였습니다

 

미나모토 가문에서 유배를 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이러한 전횡을 참지 못하고, 반 헤이케 세력을 만들고, 겐페이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타이라 가문 vs 미나모투 가문(호조 가문, 그외 지방의 여러 세력) 이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 전쟁은 일본 전역에 사무라이 계급들이 참전하였고 결국 미나모토 가문이 승리합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겐페이 전쟁에 승리하고, 이때부터 가무쿠라 막부가 시작됩니다

 

이후에, 무로마치 막부, 센고쿠 시대, 에도 막부 약 700년 동안 쇼군이 통치를 하게 됩니다.

 

한국사에 무장들이 다스렸던 때가 있죠. 바로 고려 무신정권입니다.

왕은 허수아비을 세우고, 실권은 무장들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 최충헌 등 다스렸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소가씨 문장

6~7세기 일본에서 가장 권력이 큰 소가가문입니다.

천황까지 옹립하던 대단한 가문이였습니다.

 

소가씨 족씨

소가노 이나메-소가노 우마코-소가노 애미시-소가노 이루가 까지 빨간 박스를 친 소가씨 아들들이 절대 권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본인의 딸들을 천황의 비로 두고, 즉 소가씨는 왕실의 외척세력이 되게 됩니다.

 

한국사에서도 왕실의 외척이 권력을 잡은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32대 스슌 천황까지 암살하고 소가씨는 본인 입맛에 맞는 천황을 옹립합니다.

 

소가씨는 백제계의 도래인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냥 의혹일뿐 이 가문이 백제계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시대 배경
643년 겨울, 권신 소가노 에미시가 병으로 정사를 돌보지 못하게 되자, 그의 아들 소가노 이루카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소가노 이루카는 쇼토쿠 태자 계열의 황족과 세력을 제거하고, 자신의 친척인 후루히토노오에 황자를 천황으로 세우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정통 계승자였던 야마시로노오오에노오오키미 일가는 자결하게 되고, 쇼토쿠 태자의 직계는 단절된다.

 

소노가 이루카 초상화

 

이루카의 전횡과 반발

소가노 이루카는 아버지 소가노 에미시의 병환 이후 정권을 사실상 장악하며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습니다. 그의 위세는 단순한 정치 권력을 넘어 공포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졌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이루카의 이름만 들어도 몸을 움츠렸고, 길에 떨어진 물건조차 주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만큼 이루카의 존재는 권위 그 자체였고, 조정에서도 누구 하나 공개적으로 맞서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독주에 대한 반발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특히 나카토미노 카마타리는 이루카의 전횡이 천황 중심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에 맞설 행동을 결심하게 됩니다. 카마타리는 황실의 정통성을 되살리기 위해 조메이 천황과 고교쿠 천황의 아들이자, 장차 일본 최초의 개혁 군주가 될 **나카노오에 황자(후일의 덴지 천황)**에게 접근합니다. 두 사람은 이루카를 제거하기 위한 밀약을 맺고, 점차 동조 세력을 규합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을사의변

왼쪽 위는 당시 고교쿠 천황
참수형을 당하는 인물은 소노가 이루가

참수형 오른쪽 칼을 들고 있는 인물이 나카노오오에 황자 훗날 덴지천황

활을 들고 있는 인물이 나카토미노 카마타리

쿠데타 실행 – 궁중에서 일어난 을사의 변

645년 6월 12일, 운명의 날이 다가옵니다. 이날은 삼한(신라, 백제, 고구려) 사신들을 맞이하는 공식 행사가 궁궐에서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고교쿠 천황이 친히 참석한 가운데, 이루카 역시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권신 자격으로 자리에 나섭니다.

이루카는 평소 의심이 많아 항상 칼을 차고 있었지만, 이날만큼은 의식의 격식에 따라 무장을 해제하고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 순간을 노린 것이 바로 나카노오에 황자카마타리가 준비한 암살 작전이었습니다.

나카노오에 황자는 궁전 내부에 숨어 긴 창을 들고 있었고, 카마타리는 활과 화살로 그를 호위했습니다. 호위관들을 비롯해 사전에 포섭된 인물들은 겉으로는 공식 행사에 참석한 것처럼 꾸미고 있었지만, 사실은 모두 이루카 제거를 위한 공모자들이었습니다.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정해진 신호가 떨어지자 사에키노스쿠네 코마로와카이누카이노무라지 아미타가 칼을 빼들고 순식간에 이루카에게 돌진합니다. 이루카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머리와 어깨, 그리고 다리에 치명상을 입고 비틀거리며 무너집니다. 그는 어좌로 기어가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줄 것을 간청했지만, 나카노오에 황자는 차갑게 선언합니다.

 

“천손이 다스릴 자리에 권신이 어찌 대신할 수 있는가!”

 

이루카는 결국 그 자리에서 처형되며, 소가씨의 권력도 동시에 무너집니다.

한편 이 극적인 사건은 한반도 사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생했기에 외교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특히 후루히토노오에 황자가 “한인이 이루카를 죽였다”라고 외친 말은 후대에 다양한 해석을 낳게 되며, 나카토미노 카마타리가 도래계(한반도계) 인물이었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아스카궁터 소노가 이루카 머리가 짤렸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

 

을사의 변이 일어나고, 소노가 애미시는 본인 집에 불을 질러 스스로 자결을 하게 됩니다.

소가 가문은 이렇게 멸문지화을 당하게 되버립니다.

 

일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아스카시대에 일어난 을사의변

그리고 에도시대에 일어난 메이지유신입니다.

이 두 사건은 일본의 흐름을 바꾼 사건입니다.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아스카 시대란? 우리나라가 삼국시대였을때, 일본은 아스카 시대로 불렸습니다.

아스카 시대란, 현재 나라시 남쪽에 위치한 아스카 시대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스카 시대에 백제에서 불교수용을 두고 내란이 일어난 정미의 난입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인물은 천황도 아니고, 당시 귀족이였던 소가노 우마코

소가노 우마코

 

모노노베노 모리야

모노노베노 모리야 이

 이 두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소가씨 가문과 모노노베노 가문이 불교수용을 넣고 찬반의견이 있었습니다.

 

정미의변이라 부르고 다른 이름으로는 모노노베 모리야의 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소가씨 가문과, 모노노베노 가문은 이 두 가문은 권력욕심에 자주 무장 충돌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소가씨 가문이 이기고 소가씨 가문이 득세하기 시작합니다.

 

그림은 소가씨 가문의 족보입니다.

 

모노노베노 가문을 이기고 소가노 이나메, 소가나 우마코 이 부모와 아들은 누나를 천황의 비를 두거나, 딸들도 다 천황의 비, 또는 태자의 비로 무지막지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됩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백제에서 불교수용을 두고, 찬성도 있고 반대가 있었습니다.

 

소가노 가문은 찬성, 모노노베노 가문은 자연스레 반대였죠. 항상 이 두 가문은 대립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결국 모노노베노 모리야가 불교수용 반대의 의견으로 반란을 도모하게 됩니다.

 

정미의난이라고 합니다.

 

정미의 난을 자세하게 찾아볼려고 해도, 워낙 고대의 문서라 찾기가 힘드네요.

 

587년, 소가노 우마코가 모노노베 모리야를 토벌하여 격전 끝에 승리하고, 모노노베 씨를 중앙 정치에서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이로 인해 소가 씨와 우마야도 황자의 권력이 크게 강화되고, 불교의 전파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전투 후 모노노베 씨의 영지와 노예는 소가 씨와 사천왕사에 분배되었습니다.  

 

결국 모노노베노 모리야 일파를 모두 제거 후에 소가노 가문의 1인 권력을 쥐게 됩니다.

 

大臣(おおおみ)오오미라는 천황의 다음 가는 권력을 가지게 되고, 이 권력이 계속 될꺼라 생각되지만, 이 권력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소가씨는 몰락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요즘 일본사에 공부를 다시 하고 있던 와중에, 미스테리한 역사를 알게 되어서 포스팅합니다.

 

바로 야요이 시대에 야마타이국의 히미코 여왕입니다.

 

이 기록은 중국의 사서인 후당서, 삼국지 정사에 왜에 히미코 여왕이 즉위를 했다는 기록과, 우리의 삼국사기에 히미코 여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데 일본의 일본 기록에는 히미코 여왕의 기록이 일체 없습니다.

 

1. 삼국지 위서 동이전 히미코 여왕의 기록

其國本亦以男子爲王,住七八十年,倭國亂,相攻伐歷年,乃共立一女子爲王,名曰卑彌呼,事鬼道,能惑衆,年已長大,無夫婿,有男弟佐治國。自爲王以來,少有見者。以婢千人自侍,唯有男子一人給飲食,傳辭出入。居處宮室樓觀,城柵嚴設,常有人持兵守衛。

 

야마티이 국은 본래 남자를 왕으로 삼았는데, 왜국이 어지러워 한 여자를 왕으로 삼았고, 이름이 히미코다.
중국 위나라 황제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마쳤고, 이때부터 야마타이국은 위나라의 조공국이 되었다. 

그를 보는 사람은 적었고, 한 명의 남자만이 음식을 올리고, 그의 곁에 출입을 하였고, 궁전은 누각이나 성벽을 위나라 낙양성을 참고하였고, 히미코 여왕이 죽고, 왜인은 큰 무덤을 만들었고, 노비 백여 명을 순장하였다.

 

2.삼국사기 신라본기의 히미코 여왕의 기록

二十年, 夏五月, 倭女王卑彌乎, 遣使來聘.

아달라 이사금 20년 여름 5월, 왜 여왕 히미코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3.일본에는 히미코 여왕의 기록이 없다.

 

4.일본에서도 야마타이국에 대한 일본의 기록도 없습니다.

 

일본이 고서기인 일본서기에도 이러한 기록이 아예 없습니다.

 

히미코 여왕처럼, 일본에는 기록이 없고, 중국의 고사기에는 기록이 있는 일본의 왕들도 있습니다.

 

대체 왜 일본의 고사기에는 이러한 기록이 없는지 궁금증을 폭발시키네요

 

야마타이국의 히미코 여왕

 

실제로 규슈섬에 야마타이국이 있었다는 의문만 있고, 일본의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역시, 규슈의 있다가, 거점을 오사카로 옴겼다는 일본서기에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천황중에 여성 천황이 10명이 됩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사기는 천황중심으로 기록을 했기에, 본인의 역사또한 왜곡을 했나? 싶기도 합니다.

 

다음에는 좀더 재미난 주제로 포스팅하겠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이번에는 고려의 쿠데타는 어느것들이 있어나에 대해서 알아볼겁니다.

고려 전도

1.후삼국시대

신라 말기에 서라벌에서는 왕위다툼으로 지방행정이 다 무너졌고, 지방의 호족들이 등장했습니다.

신라 말기 호족세력 분포도

드라마 태조왕건을 시청한 분들이라면, 몇몇의 호족가문들을 알고 있을겁니다.

견훤의 아버지인 충주지방의 아지태, 태조의 3비이자 정종,광종의 유긍달 가문,  태조의 1비 유천궁 가문, 왕건의 아버지인 왕륜, 궁예가 처음 몸은 은탁만 양길 등등이 보입니다.

드라마 태조왕건의 궁예와 견훤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

궁예는 일단 신라왕족 출신 기록에 있습니다.

신라말에는 왕위다툼으로 서로 죽이며 왕위다툼을 하였고, 궁예역시 왕명으로 죽을 위험에 처해, 신라를 적대적으로 하게되었습니다.

궁예는 도망치고, 세달사에 몸을 의탁해, 선종이라 불렸고, 궁예는 군벌 기훤을 찾아가 휘하에 들려고 했지만, 궁예가 애꾸눈이라는 이유로 거절합니다. 이에 양길의 휘하로 들어가, 여러 공을 세우고, 명주의 김순식을 제압하고, 궁예는 점점 세력을 확대하고, 강원도 일대를 점령하면서, 철원을 도읍으로 후고구려를 세우게 됩니다. 이게 바로 고려의 기초가 되는 세력입니다.

 

견훤의 후백제 건국

견훤은 신라의 장군이였습니다.

서남해의 방수로 배정을 받고, 현재의 나주? 거기서 군생활을 하고 있던 때에, 견훤역시 신라가 불안하다고 봤고, 무진주를 습격하여, 점점 현재의 전라도 지역을 장악하여, 나라의 기틀을 만들고, 완산주를 도읍으로 하여, 후백제를 건국하게 됩니다.

 

왕건의 역성혁명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 나라 이름은 후고구려-마진-태봉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스스로를 미록이라 하여, 관심법으로 관료들을 심판하기 시작합니다. 당시에 왕건은 명망이 높았고, 출진만 했다하면 항상 승리를 안겨준 궁예입장에서 소중한 장군이였습니다.

왕건은 시중이라는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궁예는 이떄 의심병이 많아지고, 왕건에게 반란을 모의 했냐, 물어보고, 왕건을 의심했고, 여러 신하들 중에 홍유,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은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왕으로 옹립할 계획을 세웠고, 왕건은 이들과 같이 역성혁명을 하게 되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의 첫 왕인 태조가 됩니다.

 

2.본격적인 고려시대의 군사쿠데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강조의정변

강조의정변

목종시절,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태후와 목종의 폭정이 있었습니다.

천투태후와 김치양은 불륜관게로 이 둘 사이에 사생아를 낳았고, 김치양은 천추태후의 권련을 이용해서, 권력을 누리고 있고, 목종역시, 천추태후의 그늘에서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남종인 유행간과 동성애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목종이 위급한 틈을 타서, 김치양이 나라를 뺏알려고 한다는 소문을 듣고 나라를 구하고자,

이에 서북면 도순검사 간조는 헌종을 다음 후계자로 맞니하면서, 평양에서 5000명의 군사로 개경으로 향했습니다.

중간에 아직 목종이 살아있다는 보고를 듣게 되고, 고민 끝이 개경으로 향했고, 김치양일파와 목종폐위를 시키고자, 정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에 거란과 고려를 군신관계를 맺고 있었고, 강조의정변을 이유로 거란의 2차침입이 시작됩니다.

 

-

 

 

무신정변

고려 읭종때의 일입니다.

고려는 계속되는 평화가 오게 됩니다. 9대왕 덕종부터 18대 의종까지 고려의 황금기를 계속 보내게 됩니다.

평화가 계속되니, 고려는 무신들의 힘이 약해지고, 문신들이 권력이 강대해졌습니다.

그리고 문신들이 무신들은 하게 됩니다.

무신정변이 일어난 계기는 총 2가지입니다.

1.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고의로 태웠습니다.이에 정중부는 화가 나서 김돈중 때리자, 이에 김부식이 정중부 매질할려고 하 점

2.이게 실제로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무신들에게 격투를 시켰는데, 대장군 이소응이 나이가 많아, 패배했습니다. 이에 하급문신인 한뢰가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린게 폭발하게 됩니다.

 

보현원에서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 많은 무신들이 정변을 준비하고, 문신들은 죽여버리고, 이에 의종을 폐위시키고, 명종을 즉위시킵니다.

나중에 의종은 이의민에 의해서 살해당하게 됩니다.

 

고려시대 무신 정권 집권자

오늘은 고려시대의 무신집권기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무신정권이 있기 전에 고려의 상황을 알아봅시다. 당시 고려의 상황은 어땠는가? 고려는 왕건과 휘하 장수들의 의해 건국되었고 후백제

malrrr.tistory.com

무신정변에 집권자에 대해서 쓴 글이 있습니다.

 

공민왕 암살사건

공민왕은 원나라 간섭을 벗어나고자 많은 개혁과 쌍성총관부 공격을 하면서 국력이 약해진 원나라의 간섭에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공민왕의 부인이였던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자제위를 뽑게 됩니다.공민와의 신변도 보호하고, 젊고 잘생긴 청년들이 등용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 홍륜이란 지제위가 공민왕의 후궁과 간통을 하였습니다.이에 내시 최만생이 공민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하자, 이에 홍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홍륭은 지제위의 동료들과 함께 공민왕을 암살하게 됩니다.

본인이 직접 만든 관서인 지제위에게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위화도회군

신진사대부가 등장하고, 권문세족과 대립을 하게 됩니다.

이에 신진사대부는 최영과 이성계와 손을 잡게 되고, 권문세족의 이인임과 대립하게 되고,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신진사대부와 최영, 이성계등 여러 장수들이 고려 말 지배계층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이에 최영과 이성계파로 나눠지게 됩니다.

요동정벌론이 등장하면서, 최영은 요동정벌해야된다. 이성계는 반대의 입장을 내세웠지만, 최영의 요동정벌을 해야된다 생각한 우왕은 군사들을 요동으로 보내게 됩니다.

 

 

정치·외교적 위기: 당시 고려 정부는 외부의 위협(예를 들어, 여진족 등)과 내부의 부패, 무능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군사 작전이 계속될 경우 국가적 손실이 우려되었습니다.

군 내부의 불만: 장수들과 병사들 사이에서는 지속되는 전쟁과 잘못된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고, 이로 인해 군 내부에서 혁명의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장수들이 많은 불만은 품게 됩니다.

우왕과 최영의 실수는 이성계를 요동정벌에 도통사 자리를 맡긴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성계는 줄곧 요종정벌 반대론을 외쳤단 장수이기 때문이죠.

 

 

 

 

결국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에 이성계의 군사들과 최영의 군사들이 전투를 하게 되는 상황이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회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우왕을 끌어내고 아들은 창왕을 즉위시키게 됩니다.

 

이 사건은 고려를 멸망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이상 총 4개의 성공한 군사 쿠데타를 알아봤습니다.

무신정변에서도 정변이 많이 일어나지만, 하나로 통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려, 조선은 실패한 내란도 엄청 많이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고려 무신정변의 짤

 

얼마 전에 계엄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계엄은 전시 혹인 사변 비상사태에서 왕 혹은 대통령이 군대를 투입하는 겁니다.

 

한국사에도 많은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죠. 

 

왕이 통치를 잘못하여, 왕을 죽이고 나라를 다시 바로잡는 이유

왕위다툼으로 한쪽은 죽여야 되는 이유

왕위 욕심이 있는 자가 왕을 몰아내고, 그 권위를 이어나가는 거

고조선

단군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을 위만에 역성혁명을 성공하여, 위만조선이 건국됩니다.

왕조를 바꾸는 건 역성혁명이라 합니다.

 

 

 

 

고구려
고구려 5대 왕 모본왕, 날이 폭정을 이어나가고, 인간 베개를 시키거나, 신하들 중에 왕의 잘못을 이야기 한자에게 활을 쏘는 등, 폭군이었죠. 신하 두로가 폭정에 못 이겨, 시해를 하고, 태조대왕은 옹립시킵니다.

쿠데타이지만, 군대를 일으키지 않고, 살해당하게 됩니다.

 

고구려 7대 왕 차대왕, 이 역시 고구려 역사에는 폭군으로 기록됩니다. 자신의 왕위 계승의 반대한 신하들은 처형하고, 태조왕의 아들은 화가 미칠 것 같아서, 자살하고, 계속되는 폭정에 명립답부가 차대왕을 시해합니다.

 

고구려 14대 왕 봉상왕, 봉상왕의 기록은 어릴 때부터 교만과 방탄하여 의심이 많고 시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봉상왕이 즉위 초반에 창조리를 국상으로 삼았고, 봉상왕 시절에 모용선비의 침략이 자자했고, 선비족의 침략을 여러 막았다고 합니다.

선비족의 침략을 막나 내고, 고구려에서는 흉년이 들었고, 이때 봉상왕은 궁궐을 증축하는 공사를 하였습니다. 나라가 흉년이라, 궁궐 증축을 중단 요청을 하였으나, 봉상왕은 거절하였고, 계속되는 흉년에 궁궐 증축하던 백성들은 흩어지고, 창조리가 왕에게 간언을 하였지만, 왕권의 지엄함을 말하니, 창조리는 여러 신하와 모의하여, 봉상왕을 폐위시키고, 미천왕을 옹립하게 됩니다.

봉상왕을 이후 스스로 자결을 하게 됩니다.

왕이 못나니, 신하들이 폐위를 시킨 전레입니다.

 

고구려 27대 대왕 영류왕, 역사공부를 하면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연대소문의 쿠데타, 영류왕의 전임 자이자, 영류왕의 형이었던, 영양왕 시절에 수나라가 계속해서 4차례나 침공을 하게 됩니다.

고구려는 수나라의 100만 대군도 막아낼 정도로 튼튼한 나라였고, 그때도 영류왕은 태자시절 수군과 도성을 지키는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양왕이 죽자, 영류왕이 즉위하게 되고, 이에 수나라도 멸망하고, 새로운 국가인 당나라가 건국됩니다.

영류왕은 계속되는 전쟁에 당나라와 친화적인 외교를 하게 됩니다.

이에 영류왕을 중심으로 주화파들이 주요 조정을 장악해서, 당나라와 적대관계가 아닌, 서로 인절 교환하고, 당나라의 도교를 수입하고, 당나라의 여러 문화를 수용하면서 점점 연개소문과 영류왕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연개소문을 천리장성으로 떠나라는 명을 받고, 연개소문은 군 열병식을 하면서 주화파를 모두 살해하고, 궁궐도 들어가서 영류왕을 죽이게 됩니다.

고구려의 마지막 쿠데타는 대립으로 갈등하다가 결국 군대를 이용해서, 연개소문의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살해한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백제

백제 7대 대왕 사빈왕, 사빈왕은 나이가 어려, 왕족이 섭정을 하게 됩니다. 고이왕은 왕이 너무 어리기에 폐위를 시키게 됩니다.

이걸 쿠데타로 봐야 되는지 기록이 없기에 자세한 기록이 없기에,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백제의 기록은 쿠데타인데,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게 없기에, 백제는 1개로 끝맺음하겠습니다.

 

신라

신라는 전기, 중기, 말기로 나눠지게 됩니다.

 

신라 18대 대왕 마립간, 이때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즉위하던 때입니다.

왜의 침략을 받아서 고구려의 도움으로 왜군을 물리치고, 고구려에 볼모로 여러 사람을 보내게 됩니다.

동맹차원으로 왜와 우호관계를 맺고 왕족을 볼모로 보내고,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위해서, 마립간의 아들 복호를 볼모로 보내고, 마립간의 다른 아들까지 볼모로 보내려다가 고구려의 지원을 받은 눌지 마립간이 반기를 들어, 내물마립간은 결국 처형되게 됩니다.

 

신라 26대 대왕 진평왕

칠숙, 석품의 난입니다. 이 쿠데타는 사전에 알아차리고 대응을 하였습니다.

칠숙의 구족을 멸하였고, 석품을 반란을 꾀하다가 도망쳤고, 도망가는 길에 처와 자식이 보고 싶은 마음에 나무꾼의 옷을 입고 나무를 지고서 집에 오다가 결국 잡혀서 처형을 당한 사건입니다.

 

신라 27대 대왕 선덕여왕, 비담의 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난이 일어난 이유는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이유는 이러합니다. 

한국사는 대체로 남자가 왕에 올랐습니다. 신라만 세명의 여왕이 있었죠. 선덕여왕, 그다음 진덕여왕, 그리고 신라 말기에 진성여왕

 

이후에 통일하고, 36대 대왕 혜공왕 때부터 신라는 평화로운 상태로 호족들이 점점 등장하게 됩니다.

왕실은 서로 왕위다툼을 하느냐, 지방행정은 나 몰라라 하면서, 지방의 호족들은 점점 하나의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신라말기는 서로 왕위다툼으로 많은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까지 고조선, 삼국시대에 쿠데타입니다.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계엄이란, 전시상황(전쟁기간),사변(큰 사건 혹은 선전포고, 전쟁에 이르지 않는 무력) 등 국가에 비상사태가 발생할때 대통령이 혹은 국가 원수가 군대를 투입하는게 계엄입니다.

흔시 계엄에는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경비계엄이 있습니다.

 

주로 나라가 위태하거나, 군인들이 주로 계엄령을 선포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총 18번의 계엄에 일어났습니다.

이승만때는 6.25전쟁이 일어났기에, 전쟁 중에는 전지상황이였고, 이승만 대통령 시기에 많은 계엄령이 일어났습니다.

첫 계엄은 이승만 대통령때 여수·순천 10.19 사건으로 첫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제주4.3사건, 그리고 6.25전쟁이 일어면서 계엄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후반부에 이승만 대통령에 부정선거로 4.19혁명때도 국민들 상대로 계엄을 해버립니다.

이것에 첫 민주주의를 열망한 우리 국민들의 첫 혁명입니다.

4.19 혁명 철거되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

 

그리고 박정희에 5.16군사전변이 일어나게 됩니다.

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소장과 윤군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입니다. 이 당시에는 6.25전쟁도 있었고, 군대에 부정부패도 말이 있던 때였습니다.

중앙 박정희 소장

이때 정부는 계엄령을 내리게 됩니다. 반란이 일어났기에 계엄을 선포하게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계엄이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6.3항쟁, 대한민국과 일본의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납니다.

시위를 진압하고, 결국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왜 이 시위가 일어났냐?? 일본에 조선을 식민지배를 하였고, 이 떄도 일본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마민주항쟁때 또 계엄령이 선포됩니다.

10월 유신이 계기가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5대부터 9대 대통령을 하게 됩니다. 무려 16년 동안 대통령직을 하게 됩니다.

10월 유신이란,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해산, 헌법정지 등 특별선언을 발표하게 합니다.

즉 독재를 하기위해서 헌법을 고치게 됩니다. 


10월 유신

1.대통령 선거 방식을 간접 선거로 바꿈

2.국회의원 1/3이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

3.대통령에게 헌법 효력을 정지 하는 긴급조치권 부유

4.국회 해산,법관 임명, 법률 거부권등을 대통령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을 늘려 대통령이 3권(삼권분립)위에 군림5.

대통령 임기 6년으로 연장, 연임 제한 철폐그리고 종신 집권 가능

 

지금의 내용만 보몀 독재를 할 생각인게 눈에 보입니다.

박정희의 측근 김재규한테 총격을 맞게 됩니다.

 

 

김재규에게 총격당한 박정희 대통령은 사망하게 되고, 김재규또한 군사재판을 받게 되어 교수형에 숨지게 됩니다.

그리고 최규하 대통룡이 선출 되면서 10대 대통령이 선출됩니다.

육군의 불법 사조직 하나회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있던 전두환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나라가 위태로울때 1212쿠데타를 일으켜서 대한민국의 사실상 1인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군부에 퇴진을 위해, 전라남도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일어나게 됩니다.

1979년10월27일부터 1981년1월24일까지 비상계엄이 일어나게 됩니다.유신헌법을 개정 하고, 하나회의 서울의 봄,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또 한번 비상계엄이 일어났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입니다.

이떄 포고령은 이러합니다.

1.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 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
3.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한다.
5.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에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반국가세력 등 체제 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이 결과 지금 윤석열 대통령 탄악안에 상정되었고, 곧 표결을 한다고 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계엄데해서는 차후에 쓰겠습니다.

 

군부시절에 계엄을 느꼈던 분들은 또 공포에 시달렸을겁니다. 하지만 빠르게 계엄이 해지가 되었고, 이건 우리의 삶과 우리가 태어난 대한민국의 경제, 외교, 안보 모든것을이 다 달려있습니다.

실제로 계엄령이 내리고 나서, 코인시장은 하락하였고, 하락이유는 일단 현금확보입니다. 

그리고 환율은 1400원 이상 갔었고, 실제로 다음날 주식장에 열리고 역시나 줄줄이 하락행을 가고 있습니다. 개인투자자역시 일단 혹시 모른 현금확보를 하게 됩니다.

 

계엄은 우리 삶을 엉망으로 만들확률이 높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728x90
반응형
SMALL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대한민국은 독도를 행정적으로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하는 섬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로 주장하고 있지만,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독도에 경찰관을 상주시키며 실질적인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지하철에 독도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8월15일 광복절을 앞두고 철거를 당하게 됩니다.

지하철 독도 조형물

왜 우리 정부에서 일본에 빌미를 제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정부는 대부분 뉴라이트 성향이 강한 인사들이 배치가 되었죠.

최근에 독립기념관장도 논란이 있는 사람이 임명되고, 광복절을 앞두고 독도 조형물 철거까지 역사적으로 많이 위험한 상태입니다.

 

지금은 독도 조형물을 철거하고, 실시간으로 독도 영상을 송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독도조형물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송출해주는게 더 좋은 방법인거 같습니다.

 

 

 

 

최근에 인기 아이돌 앤믹스가 일본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불러서 일본네티즌에 표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 방송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일본 네티즌은 왜 그 노래를 불렀냐고 일본에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될 사람들은 일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일본사람이 독도를 갈 수 있나요?

없습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독도는 무조건 갈 수가 있습니다.

 

최근에 손을 다쳐서 글을 못올리고 있지만, 빨리 회복해서 다양한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