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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간의 투자 복기 — 1월부터 4월 말까지, 내 계좌에 무슨 일이 있었나

2026년 1월 2일부터 5월 초까지, 약 4개월간의 실전 투자 기록을 복기합니다. 어떤 판단을 했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 수익률과 매매 이유를 함께 공개합니다.

 


4개월 성과 요약

먼저 결과부터 말하겠습니다.

  • 주력계좌: 4개월간 수익률 약 +65%
  • 원금 420만 원 회복계좌: 4개월간 수익률 약 +93% (원금 완전 회복 달성)

4개월 만에 이런 수익률이 나온 데는 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시장 흐름을 읽고 빠르게 대응한 판단들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KODEX AI반도체는 단일 종목 수익률 **+103%**를 기록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월별로 어떤 판단을 내렸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복기해 보겠습니다.


출발점 — 1월 2일 기준

2번 계좌

1월 2일, 2번 계좌는 작년 12월부터 종목을 탐색한 끝에 4개 종목으로 구성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구성 종목

핵심 성장주 KODEX AI반도체
테마 ETF PLUS 우주항공&UAM
배당/방어 커버드콜 ETF
금융섹터 KODEX 증권

반도체를 중심에 두되, 우주항공·증권·커버드콜로 분산한 구성이었습니다.

원금 420만 원 복귀 계좌

주식을 처음 시작할 때, 누군가의 추천주를 믿고 매수를 했다가, 결국 -50%까지 보고, 과감하게 걷어내고
2025년 12월 23일에 TIGER 반도체TOP10PLUS 우주항공&UAM 두 종목만 넣고, 이후 단 한 번도 매매 없이 5월까지 보유했습니다.


1월 — 첫 번째 리밸런싱

1월 중순, 시장을 지켜보면서 첫 번째 조정을 했습니다.

매도한 종목:

  • KODEX 증권 → 금융섹터의 단기 모멘텀이 약해졌다고 판단
  • PLUS 우주항공&UAM → 원금 420만 원 있는 종목이기 때문에 정리 (3번 계좌에서 계속 보유 중이므로 중복 제거)

매수한 종목:

  • TIGER 휴머노이드 → 당시 로봇/휴머노이드 테마가 부상하면서 단기 모멘텀을 노린 매수
  • 커버드콜 추가 매수 → 방어 비중 강화

이 시점의 판단 핵심은 "확신 없는 테마는 정리하고, 반도체 중심으로 집중도를 높이자"였습니다.


2월 — 섹터 로테이션 시도

2월은 1월에 너무 많이 올른 결과 조금 소극적으로 매도, 매수를 하였습니다

매도:

  • TIGER 휴머노이드 → CES모멘텀이 끝나기에 매도(당시 현대차, 그 외 로봇섹터 많이 올라갔고 팔 시기가 돼서 매도)

매수:

  • WON 초대형IB&금융지주 → 증권주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었고, 은행과 증권을 통합한 ETF가 새로 출시되면서 매수. 기존 KODEX 증권은 1월에 팔았지만, 금융섹터 자체는 아직 살아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2월 말, 큰 결정을 내립니다. ETF 위주에서 **개별종목(반도체·원전주)**으로 갈아탔습니다. 더 높은 수익률을 노린 공격적인 전환이었습니다.

이 판단이 결과적으로 3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3월 — 이란 이슈, 그리고 위기 대응

3월, 이란-미국 갈등이 터지면서 코스피가 단기간에 8~12% 급락합니다.

이 시점에서 포트폴리오 상황은 이랬습니다:

  • KODEX AI반도체: 이미 수익이 상당히 쌓여있었고, 국내 반도체 수출 지표가 계속 좋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건 지정학 리스크일 뿐 반도체 펀더멘털과는 무관하다고 판단해서 매도하지 않고 홀딩했습니다.
  • 개별종목(반도체·원전): 2월 말에 갈아탄 개별종목들은 급락 충격이 더 컸습니다. 더 큰 손실이 나기 전에 손절하고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이 판단이 이 4개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AI반도체 ETF는 홀딩, 개별종목은 손절 — 확신이 있는 포지션과 없는 포지션을 구분한 것입니다.

현금 확보 후 새로 편입한 종목이 KODEX 신재생에너지액티브입니다. ESS·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섹터가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급락장에서 저가 매수 기회로 본 것입니다.

3월 이후 포트폴리오: 반도체 ETF + 커버드콜 + 신재생에너지


4월 — 포트 안정화와 커버드콜 전환

4월에는 공격보다 안정화에 집중했습니다.

  • 신규 상장된 TIGER 반도체TOP10커버드콜액티브 매수 → 반도체 섹터에 대한 확신은 유지하되, 커버드콜 구조로 배당 수입까지 확보하는 전략
  • 기존 커버드콜 수익 실현 → 새 커버드콜로 교체하면서 수익 확정
  • 4월 말 분배락 기준으로 DAISHIN343 AI반도체&인프라액티브 추가 → 분배락 이후 저점 매수

최종적으로 4 종목 체제로 정리되었습니다:

  1. KODEX AI반도체 — 핵심 성장 포지션 (+103%)
  2. TIGER 반도체TOP10커버드콜액티브 — 반도체 + 배당
  3. KODEX 신재생에너지액티브 — 중장기 테마
  4. DAISHIN343 AI반도체&인프라액티브 — AI 인프라 확장 베팅

아무것도 안 한 420만 원 원금복귀 계좌 — 아무것도 안 한 계좌의 수익률이 +92%

3번 계좌는 대조적입니다. 12월 23일에 TIGER 반도체TOP10PLUS 우주항공&UAM을 매수한 뒤, 단 한 번의 매매도 없이 5월까지 보유했습니다.

그 결과 수익률 약 +92%.

2번 계좌에서 수많은 매매 판단을 내린 것과 비교하면, "좋은 종목을 사서 들고 있는 것"의 힘을 보여주는 계좌입니다. 물론 반도체와 우주항공이라는 섹터 선택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4개월을 돌아보며 — 배운 점

1. 확신 있는 포지션은 흔들려도 홀딩한다

3월 급락장에서 AI반도체 ETF를 팔지 않은 판단이 결과적으로 +103% 수익의 핵심이었습니다. 펀더멘털이 변한 게 아니라 지정학 리스크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고, 이런 판단을 내리려면 평소에 해당 섹터를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2. 확신 없는 포지션은 빠르게 정리한다

개별종목 손절은 아쉽지만 올바른 판단이었습니다. 더 버텼다면 손실이 커졌을 수 있고, 현금을 확보한 덕분에 신재생에너지를 저점에서 매수할 수 있었습니다.

3. 안 파는 것도 전략이다

3번 계좌가 증명합니다. 좋은 종목을 골라서 묵혀두는 것, 그것도 훌륭한 투자 전략입니다. 매매를 많이 한다고 수익률이 높아지는 게 아닙니다.

4. 성장 → 커버드콜 전환은 유효하다

4월에 반도체 커버드콜을 편입하면서 "성장으로 원금을 키우고, 커버드콜로 수입을 만든다"는 전략의 첫 단추를 끼웠습니다. 앞으로 이 전환 과정도 블로그에서 계속 기록할 예정입니다.

 


현재 포트폴리오 (5월 초 기준)

주력 계좌의 수익

종목 비중 역할 수익률

KODEX AI반도체 최대 비중 핵심 성장 +103%
TIGER 반도체TOP10커버드콜액티브 중간 비중 성장+배당 +12%
DAISHIN343 AI반도체&인프라액티브 소형 비중 AI 인프라 +7%
KODEX 신재생에너지액티브 소형 비중 중장기 테마 +24%

원금 420만 원 복귀 계좌의 수익

종목 역할 수익률

TIGER 반도체TOP10 반도체 대표 ETF +59%
PLUS 우주항공&UAM 우주항공 테마 +92%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추천하는 글이 아닙니다. 개인 투자자의 실전 기록이며, 모든 투자 판단은 본인의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도 24,25년은 개별종목을 했지만, ETF는 여러 구성종목이 있고, 한 종목이 빠지면 다른 종목들이 방어를 해준다는 성격으로 26년은 ETF위주로 운영을 했습니다.


현재 주력계좌는 투자수익이 +65.30%
원금 420만 원 계좌는 투자수익이 93.93%

5월 5일 기준 코스피 지수 64.61%
코스피 지수대비 확실하게 두 계좌 전부 지수를 이겼습니다.

미래에셋증권에 투자 성과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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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란?

주식(Stock)은 쉽게 말해 회사의 지분입니다.

어떤 회사가 사업을 시작하거나 확장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이때 회사는 자신의 소유권을 잘게 쪼개서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데, 이 쪼개진 소유권 한 조각을 **주식(1주)**이라고 합니다.

즉, 주식을 산다는 건 그 회사의 일부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 주식 1주를 샀다면?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회사의 아주 작은 지분을 가진 **주주(株主)**가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주식을 사는 이유

주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시세차익 (매매 차익)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 회사의 주식을 1만 원에 샀는데 회사가 성장해서 주가가 2만 원이 되었다면, 팔았을 때 1만 원의 이익이 생깁니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가 주식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 시세차익입니다.

물론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무작정 사는 것이 아니라 왜 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2. 배당금

회사가 이익을 내면 그 이익의 일부를 주주들에게 나눠주는데, 이것이 배당금입니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을 받을 수 있어서, 배당금을 꾸준히 모으는 전략을 세우는 투자자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매월 배당금을 지급하는 월배당 ETF 상품도 많이 나와 있어서, 배당 투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의 구조 — 어디서 거래하나?

주식은 아무 데서나 사고파는 게 아니라, 거래소라는 공식 시장에서 거래됩니다.

국내 주식시장

한국에는 두 개의 대표 시장이 있습니다.

  • 코스피(KOSPI):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같은 대형 기업들이 상장된 시장입니다. 한국 주식시장의 대표 지수이며, 시가총액 기준으로 규모가 큰 기업들이 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 코스닥(KOSDAQ): 에코프로비엠, 알테오젠 같은 중소형·기술 성장주 중심의 시장입니다. 변동성이 더 크지만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들이 많습니다.

해외 주식시장

증권 계좌를 개설하면 해외 주식도 거래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해외 시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 — 나스닥(NASDAQ) / NYSE: 애플, 엔비디아, 테슬라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상장된 세계 최대 시장입니다.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투자하는 해외 시장이기도 합니다.
  • 중국 — 항셍(Hang Seng): 홍콩 증시 기준의 중국 대표 지수입니다.
  • 일본 — 닛케이225(Nikkei 225):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로, 도요타, 소니 같은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외 주식을 거래하려면 원화를 달러, 엔화 등으로 환전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환율 변동에 따라 추가 이익이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주식 투자를 시작하려면?

주식을 사고팔기 위해서는 증권 계좌가 필요합니다.

은행 계좌와는 다릅니다.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같은 증권회사에서 계좌를 개설해야 주식 거래가 가능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앱으로 비대면 개설이 가능하기 때문에, 10분이면 계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계좌를 개설하고 나면 국내 주식(코스피·코스닥)은 바로 거래 가능하고, 해외 주식은 환전 후 거래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핵심 개념 설명

주식 회사의 소유권을 쪼갠 것 (1주 = 지분 한 조각)
수익 방법 시세차익(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 배당금(이익 분배)
국내 시장 코스피(대형주), 코스닥(성장주)
해외 시장 미국(나스닥/NYSE), 중국(항셍), 일본(닛케이225) 등
필요한 것 증권회사 계좌 개설

주식 투자는 "회사의 일부를 소유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이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인 계좌 개설, 종목 선택, 투자 전략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인베스트 아카이브에서는 주식 입문부터 실전 포트폴리오 전략까지 단계별로 다룰 예정이니, 관심 있으시다면 블로그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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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페이 전쟁

1. 막부란 무엇일까?

일본 역사에서 막부(幕府)는 쇼군이 통치하는 군사 정권을 의미합니다. 일본은 오랫동안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일본 역사에서 약 700년 동안 실질적인 권력은 쇼군과 그를 따르는 무사들에게 있었습니다.

시작은 헤이안 시대 후기입니다. 당시 천황과 귀족들의 힘이 약해지자, 지방에서 스스로의 땅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키운 무사들이 점차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라는 무사가 권력을 장악하고, 천황으로부터 쇼군이라는 직위를 받게 됩니다. 원래 쇼군은 '오랑캐를 정벌하는 대장군'을 뜻하는 임시직에 가까웠지만, 요리토모는 이 직위를 바탕으로 수도인 교토가 아닌 자신의 근거지에 새로운 정부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막부의 시작입니다.

이후 일본의 역사는 천황이 상징적인 존재로 남고, 실질적인 통치는 쇼군과 그들의 정부인 막부가 주도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 시기는 무려 700년 가까이 이어지며 일본의 문화와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2.막부의 시발점이 된 겐페이 전쟁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enpei_kassen.jpg#/media/%ED%8C%8C%EC%9D%BC:Genpei_kassen.jpg

 

File:Genpei kassen.jpg - Wikimedia Commons

From Wikimedia Commons, the free media repository

commons.wikimedia.org

 

 "겐페이토키츠" 라고 4개의 가문 귀족가문을 뜻합니다.
모두 천황이랑 혈연관계입니다.
다이카 개신의 공로로 천황에게 이름을 부여받은 후지와라 가문
3개 가문은 모두 천황가와 연결된 가문
미나모토 가문, 헤이케(타이라) 가문, 타치바나 가문 총 4개의 가문입니다.

 

미나모토 가문, 타아라 가문은 왕실에 내전에도 참여을 한 가문입니다.

덴노와 상왕의 정치 다툼인 호겐의 난

니조 천황과 고시라카와 상왕의 내전인 헤이지의난, 헤이지의 난에서 미나모토 가문은 참전했던 사람들은 처형당하거나 유배생활, 혹은 숨어서 살게 됩니다

이렇게 정권을 장악한  타이라노 기요모리(타아라 가문)

황실과 혼인, 정치적 입지 강화, 그에 따른 인사권, 경제권 모두 독점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권력을 장악한 타아라 가문에 불만들이 팽배하였습니다

 

미나모토 가문에서 유배를 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이러한 전횡을 참지 못하고, 반 헤이케 세력을 만들고, 겐페이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타이라 가문 vs 미나모투 가문(호조 가문, 그외 지방의 여러 세력) 이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 전쟁은 일본 전역에 사무라이 계급들이 참전하였고 결국 미나모토 가문이 승리합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겐페이 전쟁에 승리하고, 이때부터 가무쿠라 막부가 시작됩니다

 

이후에, 무로마치 막부, 센고쿠 시대, 에도 막부 약 700년 동안 쇼군이 통치를 하게 됩니다.

 

한국사에 무장들이 다스렸던 때가 있죠. 바로 고려 무신정권입니다.

왕은 허수아비을 세우고, 실권은 무장들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 최충헌 등 다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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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씨 문장

6~7세기 일본에서 가장 권력이 큰 소가가문입니다.

천황까지 옹립하던 대단한 가문이였습니다.

 

소가씨 족씨

소가노 이나메-소가노 우마코-소가노 애미시-소가노 이루가 까지 빨간 박스를 친 소가씨 아들들이 절대 권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본인의 딸들을 천황의 비로 두고, 즉 소가씨는 왕실의 외척세력이 되게 됩니다.

 

한국사에서도 왕실의 외척이 권력을 잡은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32대 스슌 천황까지 암살하고 소가씨는 본인 입맛에 맞는 천황을 옹립합니다.

 

소가씨는 백제계의 도래인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냥 의혹일뿐 이 가문이 백제계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시대 배경
643년 겨울, 권신 소가노 에미시가 병으로 정사를 돌보지 못하게 되자, 그의 아들 소가노 이루카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소가노 이루카는 쇼토쿠 태자 계열의 황족과 세력을 제거하고, 자신의 친척인 후루히토노오에 황자를 천황으로 세우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정통 계승자였던 야마시로노오오에노오오키미 일가는 자결하게 되고, 쇼토쿠 태자의 직계는 단절된다.

 

소노가 이루카 초상화

 

이루카의 전횡과 반발

소가노 이루카는 아버지 소가노 에미시의 병환 이후 정권을 사실상 장악하며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습니다. 그의 위세는 단순한 정치 권력을 넘어 공포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졌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이루카의 이름만 들어도 몸을 움츠렸고, 길에 떨어진 물건조차 주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만큼 이루카의 존재는 권위 그 자체였고, 조정에서도 누구 하나 공개적으로 맞서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독주에 대한 반발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특히 나카토미노 카마타리는 이루카의 전횡이 천황 중심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에 맞설 행동을 결심하게 됩니다. 카마타리는 황실의 정통성을 되살리기 위해 조메이 천황과 고교쿠 천황의 아들이자, 장차 일본 최초의 개혁 군주가 될 **나카노오에 황자(후일의 덴지 천황)**에게 접근합니다. 두 사람은 이루카를 제거하기 위한 밀약을 맺고, 점차 동조 세력을 규합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을사의변

왼쪽 위는 당시 고교쿠 천황
참수형을 당하는 인물은 소노가 이루가

참수형 오른쪽 칼을 들고 있는 인물이 나카노오오에 황자 훗날 덴지천황

활을 들고 있는 인물이 나카토미노 카마타리

쿠데타 실행 – 궁중에서 일어난 을사의 변

645년 6월 12일, 운명의 날이 다가옵니다. 이날은 삼한(신라, 백제, 고구려) 사신들을 맞이하는 공식 행사가 궁궐에서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고교쿠 천황이 친히 참석한 가운데, 이루카 역시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권신 자격으로 자리에 나섭니다.

이루카는 평소 의심이 많아 항상 칼을 차고 있었지만, 이날만큼은 의식의 격식에 따라 무장을 해제하고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 순간을 노린 것이 바로 나카노오에 황자카마타리가 준비한 암살 작전이었습니다.

나카노오에 황자는 궁전 내부에 숨어 긴 창을 들고 있었고, 카마타리는 활과 화살로 그를 호위했습니다. 호위관들을 비롯해 사전에 포섭된 인물들은 겉으로는 공식 행사에 참석한 것처럼 꾸미고 있었지만, 사실은 모두 이루카 제거를 위한 공모자들이었습니다.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정해진 신호가 떨어지자 사에키노스쿠네 코마로와카이누카이노무라지 아미타가 칼을 빼들고 순식간에 이루카에게 돌진합니다. 이루카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머리와 어깨, 그리고 다리에 치명상을 입고 비틀거리며 무너집니다. 그는 어좌로 기어가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줄 것을 간청했지만, 나카노오에 황자는 차갑게 선언합니다.

 

“천손이 다스릴 자리에 권신이 어찌 대신할 수 있는가!”

 

이루카는 결국 그 자리에서 처형되며, 소가씨의 권력도 동시에 무너집니다.

한편 이 극적인 사건은 한반도 사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생했기에 외교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특히 후루히토노오에 황자가 “한인이 이루카를 죽였다”라고 외친 말은 후대에 다양한 해석을 낳게 되며, 나카토미노 카마타리가 도래계(한반도계) 인물이었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아스카궁터 소노가 이루카 머리가 짤렸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

 

을사의 변이 일어나고, 소노가 애미시는 본인 집에 불을 질러 스스로 자결을 하게 됩니다.

소가 가문은 이렇게 멸문지화을 당하게 되버립니다.

 

일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아스카시대에 일어난 을사의변

그리고 에도시대에 일어난 메이지유신입니다.

이 두 사건은 일본의 흐름을 바꾼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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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시대란? 우리나라가 삼국시대였을때, 일본은 아스카 시대로 불렸습니다.

아스카 시대란, 현재 나라시 남쪽에 위치한 아스카 시대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스카 시대에 백제에서 불교수용을 두고 내란이 일어난 정미의 난입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인물은 천황도 아니고, 당시 귀족이였던 소가노 우마코

소가노 우마코

 

모노노베노 모리야

모노노베노 모리야 이

 이 두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소가씨 가문과 모노노베노 가문이 불교수용을 넣고 찬반의견이 있었습니다.

 

정미의변이라 부르고 다른 이름으로는 모노노베 모리야의 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소가씨 가문과, 모노노베노 가문은 이 두 가문은 권력욕심에 자주 무장 충돌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소가씨 가문이 이기고 소가씨 가문이 득세하기 시작합니다.

 

그림은 소가씨 가문의 족보입니다.

 

모노노베노 가문을 이기고 소가노 이나메, 소가나 우마코 이 부모와 아들은 누나를 천황의 비를 두거나, 딸들도 다 천황의 비, 또는 태자의 비로 무지막지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됩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백제에서 불교수용을 두고, 찬성도 있고 반대가 있었습니다.

 

소가노 가문은 찬성, 모노노베노 가문은 자연스레 반대였죠. 항상 이 두 가문은 대립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결국 모노노베노 모리야가 불교수용 반대의 의견으로 반란을 도모하게 됩니다.

 

정미의난이라고 합니다.

 

정미의 난을 자세하게 찾아볼려고 해도, 워낙 고대의 문서라 찾기가 힘드네요.

 

587년, 소가노 우마코가 모노노베 모리야를 토벌하여 격전 끝에 승리하고, 모노노베 씨를 중앙 정치에서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이로 인해 소가 씨와 우마야도 황자의 권력이 크게 강화되고, 불교의 전파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전투 후 모노노베 씨의 영지와 노예는 소가 씨와 사천왕사에 분배되었습니다.  

 

결국 모노노베노 모리야 일파를 모두 제거 후에 소가노 가문의 1인 권력을 쥐게 됩니다.

 

大臣(おおおみ)오오미라는 천황의 다음 가는 권력을 가지게 되고, 이 권력이 계속 될꺼라 생각되지만, 이 권력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소가씨는 몰락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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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사에 공부를 다시 하고 있던 와중에, 미스테리한 역사를 알게 되어서 포스팅합니다.

 

바로 야요이 시대에 야마타이국의 히미코 여왕입니다.

 

이 기록은 중국의 사서인 후당서, 삼국지 정사에 왜에 히미코 여왕이 즉위를 했다는 기록과, 우리의 삼국사기에 히미코 여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근데 일본의 일본 기록에는 히미코 여왕의 기록이 일체 없습니다.

 

1. 삼국지 위서 동이전 히미코 여왕의 기록

其國本亦以男子爲王,住七八十年,倭國亂,相攻伐歷年,乃共立一女子爲王,名曰卑彌呼,事鬼道,能惑衆,年已長大,無夫婿,有男弟佐治國。自爲王以來,少有見者。以婢千人自侍,唯有男子一人給飲食,傳辭出入。居處宮室樓觀,城柵嚴設,常有人持兵守衛。

 

야마티이 국은 본래 남자를 왕으로 삼았는데, 왜국이 어지러워 한 여자를 왕으로 삼았고, 이름이 히미코다.
중국 위나라 황제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마쳤고, 이때부터 야마타이국은 위나라의 조공국이 되었다. 

그를 보는 사람은 적었고, 한 명의 남자만이 음식을 올리고, 그의 곁에 출입을 하였고, 궁전은 누각이나 성벽을 위나라 낙양성을 참고하였고, 히미코 여왕이 죽고, 왜인은 큰 무덤을 만들었고, 노비 백여 명을 순장하였다.

 

2.삼국사기 신라본기의 히미코 여왕의 기록

二十年, 夏五月, 倭女王卑彌乎, 遣使來聘.

아달라 이사금 20년 여름 5월, 왜 여왕 히미코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3.일본에는 히미코 여왕의 기록이 없다.

 

4.일본에서도 야마타이국에 대한 일본의 기록도 없습니다.

 

일본이 고서기인 일본서기에도 이러한 기록이 아예 없습니다.

 

히미코 여왕처럼, 일본에는 기록이 없고, 중국의 고사기에는 기록이 있는 일본의 왕들도 있습니다.

 

대체 왜 일본의 고사기에는 이러한 기록이 없는지 궁금증을 폭발시키네요

 

야마타이국의 히미코 여왕

 

실제로 규슈섬에 야마타이국이 있었다는 의문만 있고, 일본의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역시, 규슈의 있다가, 거점을 오사카로 옴겼다는 일본서기에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천황중에 여성 천황이 10명이 됩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사기는 천황중심으로 기록을 했기에, 본인의 역사또한 왜곡을 했나? 싶기도 합니다.

 

다음에는 좀더 재미난 주제로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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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고려의 쿠데타는 어느것들이 있어나에 대해서 알아볼겁니다.

고려 전도

1.후삼국시대

신라 말기에 서라벌에서는 왕위다툼으로 지방행정이 다 무너졌고, 지방의 호족들이 등장했습니다.

신라 말기 호족세력 분포도

드라마 태조왕건을 시청한 분들이라면, 몇몇의 호족가문들을 알고 있을겁니다.

견훤의 아버지인 충주지방의 아지태, 태조의 3비이자 정종,광종의 유긍달 가문,  태조의 1비 유천궁 가문, 왕건의 아버지인 왕륜, 궁예가 처음 몸은 은탁만 양길 등등이 보입니다.

드라마 태조왕건의 궁예와 견훤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

궁예는 일단 신라왕족 출신 기록에 있습니다.

신라말에는 왕위다툼으로 서로 죽이며 왕위다툼을 하였고, 궁예역시 왕명으로 죽을 위험에 처해, 신라를 적대적으로 하게되었습니다.

궁예는 도망치고, 세달사에 몸을 의탁해, 선종이라 불렸고, 궁예는 군벌 기훤을 찾아가 휘하에 들려고 했지만, 궁예가 애꾸눈이라는 이유로 거절합니다. 이에 양길의 휘하로 들어가, 여러 공을 세우고, 명주의 김순식을 제압하고, 궁예는 점점 세력을 확대하고, 강원도 일대를 점령하면서, 철원을 도읍으로 후고구려를 세우게 됩니다. 이게 바로 고려의 기초가 되는 세력입니다.

 

견훤의 후백제 건국

견훤은 신라의 장군이였습니다.

서남해의 방수로 배정을 받고, 현재의 나주? 거기서 군생활을 하고 있던 때에, 견훤역시 신라가 불안하다고 봤고, 무진주를 습격하여, 점점 현재의 전라도 지역을 장악하여, 나라의 기틀을 만들고, 완산주를 도읍으로 하여, 후백제를 건국하게 됩니다.

 

왕건의 역성혁명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 나라 이름은 후고구려-마진-태봉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스스로를 미록이라 하여, 관심법으로 관료들을 심판하기 시작합니다. 당시에 왕건은 명망이 높았고, 출진만 했다하면 항상 승리를 안겨준 궁예입장에서 소중한 장군이였습니다.

왕건은 시중이라는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궁예는 이떄 의심병이 많아지고, 왕건에게 반란을 모의 했냐, 물어보고, 왕건을 의심했고, 여러 신하들 중에 홍유,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은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왕으로 옹립할 계획을 세웠고, 왕건은 이들과 같이 역성혁명을 하게 되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의 첫 왕인 태조가 됩니다.

 

2.본격적인 고려시대의 군사쿠데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강조의정변

강조의정변

목종시절,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태후와 목종의 폭정이 있었습니다.

천투태후와 김치양은 불륜관게로 이 둘 사이에 사생아를 낳았고, 김치양은 천추태후의 권련을 이용해서, 권력을 누리고 있고, 목종역시, 천추태후의 그늘에서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남종인 유행간과 동성애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목종이 위급한 틈을 타서, 김치양이 나라를 뺏알려고 한다는 소문을 듣고 나라를 구하고자,

이에 서북면 도순검사 간조는 헌종을 다음 후계자로 맞니하면서, 평양에서 5000명의 군사로 개경으로 향했습니다.

중간에 아직 목종이 살아있다는 보고를 듣게 되고, 고민 끝이 개경으로 향했고, 김치양일파와 목종폐위를 시키고자, 정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에 거란과 고려를 군신관계를 맺고 있었고, 강조의정변을 이유로 거란의 2차침입이 시작됩니다.

 

-

 

 

무신정변

고려 읭종때의 일입니다.

고려는 계속되는 평화가 오게 됩니다. 9대왕 덕종부터 18대 의종까지 고려의 황금기를 계속 보내게 됩니다.

평화가 계속되니, 고려는 무신들의 힘이 약해지고, 문신들이 권력이 강대해졌습니다.

그리고 문신들이 무신들은 하게 됩니다.

무신정변이 일어난 계기는 총 2가지입니다.

1.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고의로 태웠습니다.이에 정중부는 화가 나서 김돈중 때리자, 이에 김부식이 정중부 매질할려고 하 점

2.이게 실제로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무신들에게 격투를 시켰는데, 대장군 이소응이 나이가 많아, 패배했습니다. 이에 하급문신인 한뢰가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린게 폭발하게 됩니다.

 

보현원에서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 많은 무신들이 정변을 준비하고, 문신들은 죽여버리고, 이에 의종을 폐위시키고, 명종을 즉위시킵니다.

나중에 의종은 이의민에 의해서 살해당하게 됩니다.

 

고려시대 무신 정권 집권자

오늘은 고려시대의 무신집권기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무신정권이 있기 전에 고려의 상황을 알아봅시다. 당시 고려의 상황은 어땠는가? 고려는 왕건과 휘하 장수들의 의해 건국되었고 후백제

malrrr.tistory.com

무신정변에 집권자에 대해서 쓴 글이 있습니다.

 

공민왕 암살사건

공민왕은 원나라 간섭을 벗어나고자 많은 개혁과 쌍성총관부 공격을 하면서 국력이 약해진 원나라의 간섭에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공민왕의 부인이였던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자제위를 뽑게 됩니다.공민와의 신변도 보호하고, 젊고 잘생긴 청년들이 등용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 홍륜이란 지제위가 공민왕의 후궁과 간통을 하였습니다.이에 내시 최만생이 공민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하자, 이에 홍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홍륭은 지제위의 동료들과 함께 공민왕을 암살하게 됩니다.

본인이 직접 만든 관서인 지제위에게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위화도회군

신진사대부가 등장하고, 권문세족과 대립을 하게 됩니다.

이에 신진사대부는 최영과 이성계와 손을 잡게 되고, 권문세족의 이인임과 대립하게 되고,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신진사대부와 최영, 이성계등 여러 장수들이 고려 말 지배계층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이에 최영과 이성계파로 나눠지게 됩니다.

요동정벌론이 등장하면서, 최영은 요동정벌해야된다. 이성계는 반대의 입장을 내세웠지만, 최영의 요동정벌을 해야된다 생각한 우왕은 군사들을 요동으로 보내게 됩니다.

 

 

정치·외교적 위기: 당시 고려 정부는 외부의 위협(예를 들어, 여진족 등)과 내부의 부패, 무능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군사 작전이 계속될 경우 국가적 손실이 우려되었습니다.

군 내부의 불만: 장수들과 병사들 사이에서는 지속되는 전쟁과 잘못된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고, 이로 인해 군 내부에서 혁명의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장수들이 많은 불만은 품게 됩니다.

우왕과 최영의 실수는 이성계를 요동정벌에 도통사 자리를 맡긴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성계는 줄곧 요종정벌 반대론을 외쳤단 장수이기 때문이죠.

 

 

 

 

결국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에 이성계의 군사들과 최영의 군사들이 전투를 하게 되는 상황이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회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우왕을 끌어내고 아들은 창왕을 즉위시키게 됩니다.

 

이 사건은 고려를 멸망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점입니다.

 

이상 총 4개의 성공한 군사 쿠데타를 알아봤습니다.

무신정변에서도 정변이 많이 일어나지만, 하나로 통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려, 조선은 실패한 내란도 엄청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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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변의 짤

 

얼마 전에 계엄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계엄은 전시 혹인 사변 비상사태에서 왕 혹은 대통령이 군대를 투입하는 겁니다.

 

한국사에도 많은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죠. 

 

왕이 통치를 잘못하여, 왕을 죽이고 나라를 다시 바로잡는 이유

왕위다툼으로 한쪽은 죽여야 되는 이유

왕위 욕심이 있는 자가 왕을 몰아내고, 그 권위를 이어나가는 거

고조선

단군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을 위만에 역성혁명을 성공하여, 위만조선이 건국됩니다.

왕조를 바꾸는 건 역성혁명이라 합니다.

 

 

 

 

고구려
고구려 5대 왕 모본왕, 날이 폭정을 이어나가고, 인간 베개를 시키거나, 신하들 중에 왕의 잘못을 이야기 한자에게 활을 쏘는 등, 폭군이었죠. 신하 두로가 폭정에 못 이겨, 시해를 하고, 태조대왕은 옹립시킵니다.

쿠데타이지만, 군대를 일으키지 않고, 살해당하게 됩니다.

 

고구려 7대 왕 차대왕, 이 역시 고구려 역사에는 폭군으로 기록됩니다. 자신의 왕위 계승의 반대한 신하들은 처형하고, 태조왕의 아들은 화가 미칠 것 같아서, 자살하고, 계속되는 폭정에 명립답부가 차대왕을 시해합니다.

 

고구려 14대 왕 봉상왕, 봉상왕의 기록은 어릴 때부터 교만과 방탄하여 의심이 많고 시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봉상왕이 즉위 초반에 창조리를 국상으로 삼았고, 봉상왕 시절에 모용선비의 침략이 자자했고, 선비족의 침략을 여러 막았다고 합니다.

선비족의 침략을 막나 내고, 고구려에서는 흉년이 들었고, 이때 봉상왕은 궁궐을 증축하는 공사를 하였습니다. 나라가 흉년이라, 궁궐 증축을 중단 요청을 하였으나, 봉상왕은 거절하였고, 계속되는 흉년에 궁궐 증축하던 백성들은 흩어지고, 창조리가 왕에게 간언을 하였지만, 왕권의 지엄함을 말하니, 창조리는 여러 신하와 모의하여, 봉상왕을 폐위시키고, 미천왕을 옹립하게 됩니다.

봉상왕을 이후 스스로 자결을 하게 됩니다.

왕이 못나니, 신하들이 폐위를 시킨 전레입니다.

 

고구려 27대 대왕 영류왕, 역사공부를 하면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연대소문의 쿠데타, 영류왕의 전임 자이자, 영류왕의 형이었던, 영양왕 시절에 수나라가 계속해서 4차례나 침공을 하게 됩니다.

고구려는 수나라의 100만 대군도 막아낼 정도로 튼튼한 나라였고, 그때도 영류왕은 태자시절 수군과 도성을 지키는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양왕이 죽자, 영류왕이 즉위하게 되고, 이에 수나라도 멸망하고, 새로운 국가인 당나라가 건국됩니다.

영류왕은 계속되는 전쟁에 당나라와 친화적인 외교를 하게 됩니다.

이에 영류왕을 중심으로 주화파들이 주요 조정을 장악해서, 당나라와 적대관계가 아닌, 서로 인절 교환하고, 당나라의 도교를 수입하고, 당나라의 여러 문화를 수용하면서 점점 연개소문과 영류왕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연개소문을 천리장성으로 떠나라는 명을 받고, 연개소문은 군 열병식을 하면서 주화파를 모두 살해하고, 궁궐도 들어가서 영류왕을 죽이게 됩니다.

고구려의 마지막 쿠데타는 대립으로 갈등하다가 결국 군대를 이용해서, 연개소문의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살해한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백제

백제 7대 대왕 사빈왕, 사빈왕은 나이가 어려, 왕족이 섭정을 하게 됩니다. 고이왕은 왕이 너무 어리기에 폐위를 시키게 됩니다.

이걸 쿠데타로 봐야 되는지 기록이 없기에 자세한 기록이 없기에,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백제의 기록은 쿠데타인데,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게 없기에, 백제는 1개로 끝맺음하겠습니다.

 

신라

신라는 전기, 중기, 말기로 나눠지게 됩니다.

 

신라 18대 대왕 마립간, 이때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즉위하던 때입니다.

왜의 침략을 받아서 고구려의 도움으로 왜군을 물리치고, 고구려에 볼모로 여러 사람을 보내게 됩니다.

동맹차원으로 왜와 우호관계를 맺고 왕족을 볼모로 보내고,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위해서, 마립간의 아들 복호를 볼모로 보내고, 마립간의 다른 아들까지 볼모로 보내려다가 고구려의 지원을 받은 눌지 마립간이 반기를 들어, 내물마립간은 결국 처형되게 됩니다.

 

신라 26대 대왕 진평왕

칠숙, 석품의 난입니다. 이 쿠데타는 사전에 알아차리고 대응을 하였습니다.

칠숙의 구족을 멸하였고, 석품을 반란을 꾀하다가 도망쳤고, 도망가는 길에 처와 자식이 보고 싶은 마음에 나무꾼의 옷을 입고 나무를 지고서 집에 오다가 결국 잡혀서 처형을 당한 사건입니다.

 

신라 27대 대왕 선덕여왕, 비담의 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난이 일어난 이유는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이유는 이러합니다. 

한국사는 대체로 남자가 왕에 올랐습니다. 신라만 세명의 여왕이 있었죠. 선덕여왕, 그다음 진덕여왕, 그리고 신라 말기에 진성여왕

 

이후에 통일하고, 36대 대왕 혜공왕 때부터 신라는 평화로운 상태로 호족들이 점점 등장하게 됩니다.

왕실은 서로 왕위다툼을 하느냐, 지방행정은 나 몰라라 하면서, 지방의 호족들은 점점 하나의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신라말기는 서로 왕위다툼으로 많은 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까지 고조선, 삼국시대에 쿠데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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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이란, 전시상황(전쟁기간),사변(큰 사건 혹은 선전포고, 전쟁에 이르지 않는 무력) 등 국가에 비상사태가 발생할때 대통령이 혹은 국가 원수가 군대를 투입하는게 계엄입니다.

흔시 계엄에는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경비계엄이 있습니다.

 

주로 나라가 위태하거나, 군인들이 주로 계엄령을 선포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총 18번의 계엄에 일어났습니다.

이승만때는 6.25전쟁이 일어났기에, 전쟁 중에는 전지상황이였고, 이승만 대통령 시기에 많은 계엄령이 일어났습니다.

첫 계엄은 이승만 대통령때 여수·순천 10.19 사건으로 첫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제주4.3사건, 그리고 6.25전쟁이 일어면서 계엄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후반부에 이승만 대통령에 부정선거로 4.19혁명때도 국민들 상대로 계엄을 해버립니다.

이것에 첫 민주주의를 열망한 우리 국민들의 첫 혁명입니다.

4.19 혁명 철거되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

 

그리고 박정희에 5.16군사전변이 일어나게 됩니다.

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소장과 윤군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입니다. 이 당시에는 6.25전쟁도 있었고, 군대에 부정부패도 말이 있던 때였습니다.

중앙 박정희 소장

이때 정부는 계엄령을 내리게 됩니다. 반란이 일어났기에 계엄을 선포하게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계엄이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6.3항쟁, 대한민국과 일본의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납니다.

시위를 진압하고, 결국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왜 이 시위가 일어났냐?? 일본에 조선을 식민지배를 하였고, 이 떄도 일본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마민주항쟁때 또 계엄령이 선포됩니다.

10월 유신이 계기가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5대부터 9대 대통령을 하게 됩니다. 무려 16년 동안 대통령직을 하게 됩니다.

10월 유신이란,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해산, 헌법정지 등 특별선언을 발표하게 합니다.

즉 독재를 하기위해서 헌법을 고치게 됩니다. 


10월 유신

1.대통령 선거 방식을 간접 선거로 바꿈

2.국회의원 1/3이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

3.대통령에게 헌법 효력을 정지 하는 긴급조치권 부유

4.국회 해산,법관 임명, 법률 거부권등을 대통령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을 늘려 대통령이 3권(삼권분립)위에 군림5.

대통령 임기 6년으로 연장, 연임 제한 철폐그리고 종신 집권 가능

 

지금의 내용만 보몀 독재를 할 생각인게 눈에 보입니다.

박정희의 측근 김재규한테 총격을 맞게 됩니다.

 

 

김재규에게 총격당한 박정희 대통령은 사망하게 되고, 김재규또한 군사재판을 받게 되어 교수형에 숨지게 됩니다.

그리고 최규하 대통룡이 선출 되면서 10대 대통령이 선출됩니다.

육군의 불법 사조직 하나회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있던 전두환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나라가 위태로울때 1212쿠데타를 일으켜서 대한민국의 사실상 1인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군부에 퇴진을 위해, 전라남도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일어나게 됩니다.

1979년10월27일부터 1981년1월24일까지 비상계엄이 일어나게 됩니다.유신헌법을 개정 하고, 하나회의 서울의 봄,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또 한번 비상계엄이 일어났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입니다.

이떄 포고령은 이러합니다.

1.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 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
3.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한다.
5.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에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반국가세력 등 체제 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이 결과 지금 윤석열 대통령 탄악안에 상정되었고, 곧 표결을 한다고 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계엄데해서는 차후에 쓰겠습니다.

 

군부시절에 계엄을 느꼈던 분들은 또 공포에 시달렸을겁니다. 하지만 빠르게 계엄이 해지가 되었고, 이건 우리의 삶과 우리가 태어난 대한민국의 경제, 외교, 안보 모든것을이 다 달려있습니다.

실제로 계엄령이 내리고 나서, 코인시장은 하락하였고, 하락이유는 일단 현금확보입니다. 

그리고 환율은 1400원 이상 갔었고, 실제로 다음날 주식장에 열리고 역시나 줄줄이 하락행을 가고 있습니다. 개인투자자역시 일단 혹시 모른 현금확보를 하게 됩니다.

 

계엄은 우리 삶을 엉망으로 만들확률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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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대한민국은 독도를 행정적으로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하는 섬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독도를 자국 영토로 주장하고 있지만,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독도에 경찰관을 상주시키며 실질적인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지하철에 독도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8월15일 광복절을 앞두고 철거를 당하게 됩니다.

지하철 독도 조형물

왜 우리 정부에서 일본에 빌미를 제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정부는 대부분 뉴라이트 성향이 강한 인사들이 배치가 되었죠.

최근에 독립기념관장도 논란이 있는 사람이 임명되고, 광복절을 앞두고 독도 조형물 철거까지 역사적으로 많이 위험한 상태입니다.

 

지금은 독도 조형물을 철거하고, 실시간으로 독도 영상을 송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독도조형물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송출해주는게 더 좋은 방법인거 같습니다.

 

 

 

 

최근에 인기 아이돌 앤믹스가 일본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불러서 일본네티즌에 표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 방송에서 독도는 우리땅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일본 네티즌은 왜 그 노래를 불렀냐고 일본에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될 사람들은 일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일본사람이 독도를 갈 수 있나요?

없습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독도는 무조건 갈 수가 있습니다.

 

최근에 손을 다쳐서 글을 못올리고 있지만, 빨리 회복해서 다양한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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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영정

요즘 뉴스를 보면, 계속해서 일본에서 라인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 로고를 본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바로 네이버 라인입니다.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네이버재팬에서 만든 메신저입니다. 일본의 전 국민이 라인을 사용하고 있고, 동남아도 라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일본정부에서 고객유출사건으로 네이버에 지분을 매각하라고 압박하라고 했습니다.

 

제목은 이순신의 금토패문입니다.

왜 제목이 금토패문이냐?
바로 이런 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토벌을 금하는 패문을 명나라에서 조선의 장수들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이 때문에 반박을 하게 됩니다.

 

명나라는 벽제관전투에서 패배하고  왜와 교섭을 추진합니다.

벽제관 전투

명나라에서는 심유경, 왜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 1군 선봉장이 교섭을 하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계속해서 남해바다 일어나는 해전을 계속 승리하자, 왜는 조선군의 공격을 막고자 이러한 강화협상을 하게 됩니다.

 

명나라에서 왜인들을 토벌을 금지하는 패문을 받은 이순신 장군은 다시 답장을 올리게 됩니다.

 

이건 일부입니다.

"왜인들은 스스로 군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서, 우리의 무고한 백성들을 죽였으며, 도성을 침범하고, 흉악한 짓을 벌었습니다. 이에 한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은 통분이 골수에 사무쳐 이 적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 살지 않겠노라 맹세를 하였습니다.
육지와 수공을 협공을 하면, 이 잔당들을 배 한척도 못 돌아가게 하여, 원수를 갚으려 하였습니다."
........

"왜인은 권모술수와 거짓에 능하여, 예로부터 신용을 지키는 의로움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순신의 답장에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걸 네이버 라인에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2011년 네이버는 네이버톡이라는 메신저를 개발하지만, 당시에는 카카오톡이 한국 시장을 독점하고 있어서, 크게 성공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고, 일본은 역대 최악의 참사를 맞이합니다.

이에 네이버는 일본 시장을 공략할 방법을 찾게 됩니다.

당시에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은 일본에 있었고, 동일본대지진을 직접 겪고, 이를 계기로 일본의 메신저 1등 라인을 만들게 됩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서, 가족들의 행방을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이에 네이버는 라인(메시지) 어플 이용하면, 가족이나 친척과 연락을 하는 것을 생각하여, 이때부터 라인은 일본의 1등 메신저 어플로 가게 되는 기점을 만들게 됩니다.

 

 

일본분에게 물어봐도, 라인이 한국의 네이버에서 탄생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계속해서 라인은 일본에서 흥행을 하고, 동남아까지 진출을 하였습니다.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NHN재팬에서 라인을 서비스하기 시작하고,

 

이후에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일본기업)이 라인과 야후재팬의 합병을 합의하게 됩니다

그리고 네이버와 소프토뱅크는 5대 5 합병인 A홀딩스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2023년 11월에 라인의 개인정보 51만 건이 유출사고를 일어나게 됩니다.

 

이에 일본은 1차 행정지도과 2차 행정지도를 발표하게 됩니다.

 

이에 일본은 해킹이유로 네이버의 지분 정리를 압박하게 됩니다.

 

네이버의 창업자 이해진은 좋은 의도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의 연락수단이 없기에, 라인을 출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객유출 사고가 일어나자, 일본은 네이버에게 지분을 매각하라고 압박을 하게 됩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의, "왜는 간사스럽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만약에 네이버가 1%라도 지분을 팔게 되면, 더 이상 라인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지분을 매각하라고 압박을 놓은 사람이 과거의 이토 히로부미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살아생전에 조선을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어 버리고, 그의 후손은 지금 네이버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마쓰모토 다케하시 입니다.

 

松本剛明 - Wikipedia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ja.wikipedia.org

 

죽어서도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에 악영향을 끼치네요..

 

만약에 네이버가 지분을 팔 경우에 한국의 네이버 주가도 영향을 받게 되고, 고객유출 사건으로 지분을 매각하라고 압박을 한건, 일본 입장에서 잘 못한 판단입니다.

만약에 다른 해외 기업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게 된다고 하면,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에서 사업을 하기가 쉽지가 않을 겁니다.

그냥 네이버가 한국 회사인 게 싫어서 이러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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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회의원 선거, 국민의힘이 참패를 하니, 일본에서도 도발을 합니다.

 

독도

1.4월 3일 선거 윤석열의 여당 참패

일단 선거부터 봐야 됩니다.

 

올해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입니다.
윤석열이 있는 집권 여당 국민의힘은 총 108석

그에 비해, 반대쪽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75석, 조국혁신당은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 미래 1석, 진보당 1석으로 
야당이 무려 192석을 차지하면서, 총선에 패배를 하였습니다.

가뜩이나 대선당선돼서 지지율이 50%도 안 되는 대통령이 되었는데 일본에게는 무조건 퍼주기 외교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단 계속해서 강제징용 건에서 피해배상금을 달라고 요청하였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오염수 방류를 세금을 써가면서 홍보를 했고, 여러 관련 예산을 줄이는 한편으로, 독도의 관련된 예산도 많이 삭감이 되었습니다.

 

 

 

2. 일본, "나도 좀 흔들어볼까?"

 

지금 보고 있는 건 야후지도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독도를 다케시마라 적어놓고, 일본인들은 가지도 못하는 땅을 지들 영토라고 우기는 일본의 정부입니다.

일본 윤석열 정부의 일본외교는 성공적이라고 하지만, 2020년 도쿄올림픽 때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기한 홈페이지가 있었고, 줄곧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정부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 있는 국민의힘 총선에 패배하자마자 일본 외교부는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우기고, 강제징용은 수용이 불가능하다가는 뜻을 밝혔습니다.
일본에 저자세로 외교를 하는 정부가 매우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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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 190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 전쟁 중에, 전쟁이 끝날 휴전을 보이기도 하고, 다시 공격을 하고, 가히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일단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1.2023년 알아크사 분쟁

알 아크사 모스크

2023년 4월 유대인(이스라엘인)들은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유월절(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에서 탈출된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팔레스타인 무슬림의 라마단(이슬람에서 금식을 하는 기간) 기간과 기독교의 부활절 다 겹쳐버리는 과정에서 생긴 충돌입니다.
이 알 아크사 모스크에는 21년에도 종교적 마찰로 인하여, 한번 소란이 있었고, 23년에는 유월절을 맞이해 염소를 희생시키는 행사에 반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체포하여 한 계기가 있으며,

이스라엘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관계의 정상화로 인하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결국 이스라엘을 폭격하였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역시도 대대적인 가자지구를 공격을 감행하였고, 지금까지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 전쟁 확산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남쪽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반면, 이스라엘의 북쪽에 레바논과 국경지역을 방어를 해야 됩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주재한 이란 영사관을 공습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이란의 고위 지휘관 2명을 포함해서 최소 16명의 이란인들이 사망을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최근에 이란도 전쟁 확산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란도 역시 이스라엘에 드론, 순항 미사일 등 발사를 하였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에 시리아 이란 영사관을 공습을 한 이류로 보복입니다.

이스라엘 중부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장면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권의 지지율도 하락하게 됩니다.

많은 국가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3. 모든 원인은 영국?

제가 오늘 말하고자 내용은 바로 영국입니다.

대영제국의 아랍제국 식민지

영국제국의 당시의 아랍권에 식민지 상황입니다.

이라크,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집트, 아프리카의 수단 등을 식민지로 점령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이스라엘 영토를 놓고 영국이 이중 약속을 잡았습니다.

당시에 2세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스라엘 영토, 혹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놓고 누구에게 줄지 영국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맥마흔 선언으로 아랍국가의 민족국가를 세우겠다는 구상을 약속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벨푸어 선언에 따라서 유대인들의 민족국가를 세우겠다는 이중 약속을 해버리게 됩니다.

영국은 이 처럼 이중외교를 약속하고, 나는 모르는 일이니, UN에게 이 책임을 맡기게 됩니다.

UN는 이 두 국가를 중재하기로 하였고, 결국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4차례의 중동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1차 중동전쟁-이스라엘의 건국선언으로 아랍국가들의 반발로 인하여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

2차 중동전쟁-이스라엘-영국-프랑스 동맹을 맺고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3차 중동전쟁-이스라엘이 다시 한번 선제공격을 합니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를 상대로 선제공격을 감행한 전쟁입니다.

4차 중동전쟁-이스라엘이 단식하는 기간에 이집트가 공격한 전쟁입니다. 하지만 이 전쟁 역시도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화해를 하면서 시나이 반도를 다시 이집트에 돌려주고, 이스라엘 역시 군사적으로 승리를 한 전쟁입니다.

이렇게 4차례의 중동전쟁에서는 모두 승리를 한 이스라엘, 이번에 이란과 전면전을 할 경우는 저는 5차 중동전쟁이 일어날것로 보입니다.

 

 

이번에 이스라엘의 시리아이 있는 이란영사관을 공격한 건 분명히 이스라엘의 잘못이 큽니다.

지금 뉴스의 나오는 상황으로는 전쟁이 일이 날지, 두 국가가 서로 화해를 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잘 해결돼서, 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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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년부터 시작된 여요전쟁, 1019년에 최종적으로 고려의 승리로 끝난 전쟁입니다.

고려는 성종, 목종, 현종으로 이어진 전쟁이였고

요나라(거란)은 성종이라는 요나라에서는 가장 성군이자 정복자인 군주입니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1019년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무찌르고 이후에는 고려, 송나라, 요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아봅시다.

 

1.사신 왕래

일단 3차 여요전쟁의 승리는 고려였지만, 고려는 항상 경계를 하였습니다.

요나라는 또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기 때문이죠. 고려는 요나라에 사신을 보내게 됩니다.

성종때 1차 여요전쟁 이후로 요나라와 관계를 하고 합니다. 고려는 매년 곡물을 받칠것을 요구하고, 포로들을 풀어주게 됩니다.

결국 거란역시 고려로 사신을 보내어, 관계를 개선 할것을 받아들이고, 고려는 송나라의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후에는 송나라의 연호는 안쓰고, 요나라의 연호를 쓰게 됩니다.

 

 

2.친조와 강동6주 반환 더이상 요구 안함

2차 여요전쟁이 끝나고 요나라는 계속되는 현종의 친조를 하라고 요청을 하였죠. 친조가 안되면 강동6주를 반환을 하라고 하였지만, 요나라와 고려이 관계를 개선하고, 더 이상 친조와 강동6주 반환은 안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송나라, 요나라, 고려는 팽팽한 관계와 활발한 무역을 하면서 100년 정도 보냈습니다.

 

3.약 100년 동아시시의 정세는? 금나라의 등장

평화가 지속되지만, 여전히 여진족이 고려를 침탈하고 있었습니다. 여진족은 나라규모는 아니지만, 어느 부족이 마을을 침탈하고, 고려군과 전투를 하고 이런 식으로 여진족이 동쪽을 침탈해서, 고려는 천리장성을 쌓게 됩니다.

그리고 여진족이 부족들이 결합하여 결국 금나라를 건국하고, 요나라는 쇠퇴기를 가지고, 금나라는 점점 세력을 확장하였고, 결국 요나라는 금나라의 공격을 받아서 멸망하게 됩니다.

이후에 고려의 북쪽에는 금나라가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송나라역시 금나라의 공격을 받아서 수도까지 이전하게 되고, 금나라가 동아시아에 잠깐 강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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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요전쟁을 다루면서 1차 여요전쟁을 막아낸 서희를 소개하겠습니다.

서희는 어떤 인물인가?

서희의 초상화

 

소개를 앞서서 짧게 설명을 하면, 고려시대 초기에 외교관이자 문관입니다. 

거란의 1차 칩임을 담판으로 전쟁 없이 퇴각시킨걸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1.광종대에 문과 급제, 그리고 외교으로 업적

고려 4대 왕 광종대에 18세의 나이고 문과에 급제를 하였습니다.

서희의 아버지는 서필이고, 서필은 광종이 여러 개혁을 많이하고 광종에게 바른 말을 많이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서희는 고려시대에 최고의 외교관이였습니다.

이때 고려는 송나라와 국교가 단절 되어 있는 상태인데, 이때 서희가 송나라로 가서 단절된 국교를 다시 회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있는 1차 여요전쟁때 전쟁없이 적을 퇴각시키고, 강동6주를 획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희의 가문을 또 하나 소개를 하겠습니다.

후삼국시대의 서신일이 이천 서씨의 시조이며

서필-서희-서눌-서정-서균-서공 고려 초기에 서신일의 후손들입니다.

이 모두가 고려 조정에 벼슬을 직을 하였으며, 모두 재상직이 임면된 최고의 가문입니다. 

만약에 글을 보고 있는 분들 중에 이천 서씨의 후손들이 보고 있으면 엄청 뿌듯해하겠습니다.

 

2,거란의 침입

993년에 1차 여요전쟁이 일어 나게 됩니다.

거란은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을 하였습니다.

군사의 숫자는 정확하게 알려진건 없지만, 대략 80만대군이라고 합니다.

 

1차여 요전전쟁 당시에는 강동6주가 여진족이 차지하고 있던 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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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6주의 고려의 영토

고려의 영토는 당시에 빨간줄로 그어진 형태입니다.

소손녕은 봉산에서 첫 전투를 하였고, 당시에 고려의 장수인 윤서안이 포로로 붙잡히며, 첫 전투에서 패배를 하였습니다.

이에 고려 조정에서는 항본론, 할지론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항복론은 말 그대로 항복을 하자, 할지론은 항복과 동시에 땅을 거란족에게 줘야된다고로 나눠졌습니다.

 

소손녕은 이에 안융진을 공격을 하였지만, 안융진의 중랑장 대도사, 낭방 유방이 안융진을 지켜내면서 이에 조정에는 강화론이 생겼습니다.

안융진에서 패배한 거란의 소손녕은 회담을 계속해서 요청을 합니다. 즉 소손녕도 더 이상 전투를 하기 싫다. 항복만 하면 되돌아 갈 것이라고 계속해서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이에 고려의 성종은 항전을 하자고 계속 주장한 서희를 사신으로 파견하게 됩니다.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이 시작됩니다.

소손녕은 이렇게 말을 하게 됩니다.
"고려는 신라에 일어난 나라이고, 고구려는 우리의 소유인데도 너희들이 침략하여 차지했다.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도 바다 건너의 송나라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출병한것이다. 만약에 고려가 땅을 분할해 바치고 조빙을 한 다면 무사할 것이다."

 

이에 서희는 반박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고구려의 옛 땅이고, 그렇기에 국호를 고려로 하고, 평양을 도읍한 것이다

국경 문제를 두고 말한다면, 요나라의 동경도 모조리 우리 땅에 있어야 하는데, 어찌 우리가 침략을 하였다고 하는가?
게다게 압록강 안팎은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이 훔쳐 살고 있고, 교활하게 거짓말로 길을 막고 있다. 이는 여진족 때문이고, 만약에 여진을 쫒아내고 우리의 옛 영토를 돌려주어 성과 보루를 쌓고 도로를 통하게 해준다면 어찌 조빙을 잘 하지 않겠는가?"

 

이에 거란의 황제역시도 고려가 이미 강화를 요청하였으며, 철군을 하라고 명이 떨어졌고, 이에 거란군은 퇴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동여진을 몰아내게 됩니다.

이에 흥화진, 통주, 귀주, 곽주, 용주, 철주 강동6주를 설치하면서 국경을 압록강까지 확장을 시키게 됩니다.

 

이런듯 서희는 송나라와 단절된 국교를 다시 회복하고, 거란의 침입또한 전쟁없이 퇴각시키고, 오히려 땅을 넓히는 성과를 냈습니다.

이후에는 흥화진이 2차, 3차 전쟁에도 꾿꾿하게 버텨주는 성이되었고, 거란은 매 침입마다 흥화진을 넘지 못하였습니다.

서희의 강동6주는 2차,3차 전쟁에서 중요한 역활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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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차 여요전쟁의 전개도

993년부터 1018년까지 거란이 고려를 침략한 전쟁입니다.

우리 땅에 잃어 난 전쟁이고, 우리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1차는 서희의 담판으로 오히려 강동 6주를 획득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2차는 고려가 거의 멸망직전까지 갔으나, 현종의 몽진, 양규와 김숙흥이 거란의 후방을 계속 흔들면서 거란에 막대한 피해를 줬습니다.

3차는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요나라의 전쟁을 일으킨 요나라 성종,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이고, 왜 고려를 침입하였는가?

 

1. 요라나에서는 성군

우리역사에서는 단지 우리 땅을 침입한 야만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나라 입장에서는 요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입니다.

왜 이 사람이 전쟁을 일으켰지만, 요나라의 성군으로 평가가 되고 있는가?

사실은 요 성종의 어머니의 공도 많이 컸습니다. 요 성종은 12세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왕의 나이가 어리니 보통은 어머니가 섭정을 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승천태후라는 인물입니다.

 

2. 승천태후의 활약

요나라 성종의 어머니 승천태후

요 성종이 12세에 즉위를 하니, 대신 섭정을 하게 됩니다.

섭정 기간에는 법전을 공포를 하고, 과거제를 실시하여 다양한 인재를 등용하였습니다.

이에 불교 문화를 더욱 발달시켰고, 승천태후가 섭정을 할 때 993년 1차 여요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물론 고려는 잘 방어를 하게 됩니다. 오히려 강동6주를 땅을 넓혔죠.

이때 거란과 고려는 사대관게를 맺게 되어, 일단 고려제압을 하게 됩니다.

다음은 송나라 차례가 됩니다. 1004년에 승천태후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송나라를 침입하게 됩니다.

이때 전투를 간략하게 서술하면, 거란군은 송나라의 수도 개봉이 코앞인 전주까지 진격합니다.

송나라의 수도는 개봉이고, 현재는 허난성의 지급시입니다. 황하강 바로 아래 있는 지역입니다.

 

이때 송나라의 진종역시 항전의 의지가 강하였고, 요나라의 승천태후 웬만한 합의를 해서 다시 돌아가길 원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송나라의 거란은 전연의 맹을 맺게 됩니다.

사실상 사대관계입니다. 매년 거란에 비단, 은을 받치고, 형제관계를 맺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활약을 해서, 동아시아에서 요나라는 맹주가 되었습니다.

 

3.요 성종의 고려 침입

요성종으로 추정되는 요 성종의 초상화-야율용서

 

요 성종이 친정을 친정을 선포하게 됩니다.

행정조직의 개편, 군사력을 키웠고, 이 군사력으로 티베트와 위구르 지역까지 영토를 넓히게 됩니다.

요나라의 정복군주이자 성군으로 칭송을 받지만, 고려에게는 힘을 쓰지 못하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1차 여요 전쟁에는 서희의 담판으로 오히려 영토를 정복하러 갔지만, 영토를 점령 못하고, 오히려 강동 6주를 고려에 넘겨주었고, 이에 고려는 이후에 전쟁에서 흥화진 전투에서 모두 패배하게 됩니다.

2차 여요전쟁, 이번에는 요나라 성종이 직접 군사를 끌고 침입한 전투입니다.

첫 관문은 역시 흥화진입니다. 흥화진에서 패배를 하게 됩니다. 이후에 강조의 30 만 대군을 삼수채에서 격파를 하지만, 개경까지 들어오지만, 이때 고려의 현종은 몽진을 떠나고 없게 됩니다. 이후에 현종이 친조를 하겠다는 명분으로 퇴각을 하게 됩니다.

3차 여요전쟁, 거란군 10만으로 하여 소배압이 도통사로 고려를 재침을 한 전쟁입니다.

이 역시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거란군은 또 패배를 하게 됩니다.

이렇듯 요나라의 성종은 송나라를 침입하여 전연의 맹을 맺고, 서쪽으로는 티베트, 위구르까지 영토를 넓혔지만, 고려를 상대할 때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고려거란전쟁에 요 성종(야율용서)

이후에는 더 이상 고려의 침임은 없었습니다 이미 3차례 공격을 하였고, 공격을 하는 종종 다 패배를 하였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요사에 성종은 유일하게 군주 역활을 제대로 수행한 군주라 쓰여있습니다. 그렇기에 고려를 침입을 했지만, 요나라에는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을 받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몽골이 강성해지면서, 몽골족에게 흡수가 되어버립니다. 

현재는 중국의 소수민족인 다우르족이 거란의 후손이라고 주장은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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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현종이 강감찬에게 머리에 금꽃을 꽂아주는 그림

고려 현종이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임금이었을까요?

 

고려의 5대 임금 경종의 제4비인 현정왕후와 태조왕건과 제5비 신성왕후의 아들인 왕욱 사이에서 태어난 게 바로 고려 8대왕 이름은 왕순이자, 대량원군으로 불린 현종입니다.

 

1. 잘못된 사랑, 하지만 고려의 성군을 배출

일단 잘못된 사랑입니다. 
고려왕실은 근친혼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태조와 제3비 신명왕후(유씨) 아들이 정종, 광종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태조와 제4비 신정왕후(황보 씨) 사이에 딸이 태어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들이 태어나면 왕 씨의 성을 이어갑니다.

딸이 태어나게 되면, 어머니의 성을 따라가게 됩니다. 즉 신정왕후는 황보 씨에서 정략결혼을 하였고 태조와 신정왕후에 사이에서, 왕자와 딸이 태어나게 됩니다. 딸은 광종의 비인 대목왕후이며, 왕자는 성종, 천추태후, 헌정왕후에 아버지 왕욱입니다.

 

즉 태조의 아들과 딸이죠.

광종이 신정왕태후의 딸인 대목왕후와 결혼을 하여 경종을 낳게 되고

신정왕태후의 아들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왕욱(旭)입니다. 여기서 성종과, 천추태후, 헌정왕후가 태어나게 됩니다.

경종은 천추태후와 헌정왕후와 혼인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고려왕실은 다 근친으로 묶여있습니다.

 

고려 8대 왕까지의 계보도입니다.

계보도만 보면 별 다른 건 없습니다. 하지만, 고려왕실의 근친혼으로 족보가 꼬입니다.

왕욱(旭)에서 성종과 경종과 결혼한 천추태후, 또 경종과 결혼한 헌정왕후입니다.

하지만 경종이 죽게 되자, 헌정왕후는 과부가 되어버렸고, 태조왕건과 제5비 신정왕후의 아들인 왕욱과 바람이 나게 되어버립니다.

그 결과 현종이 태어나게 됩니다.

고려왕조에서는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찰에서 남녀가 눈이 맞을 확률이 높았고, 그래서 헌정왕후와 왕욱이 불륜을 하였던 기록이 있던 겁니다.

당시의 6대의 성종이 재위 중이었고, 헌정왕후는 성종의 동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왕비는 아무리 왕이 사별을 하여도 재혼은 금지되었고, 하지만 임신을 하였고, 이를 숨기려고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왕욱을 귀양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현종을 낳자마자 사망을 하였고, 성종의 의해서 보모에게 맡겨졌습니다.

이후에 현종을 아버지가 있는 왕욱에게 보내고, 왕욱이 사망하고, 이후에 다시 개경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2. 계속되는 탄압, 출가

왕순은 대량원군에 봉해지고 개경으로 돌아가 성종이 보살피게 됩니다.

하지만 성종도 병이 들고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경종 와 천추태후의 아들인 개령군이 목종으로 즉위를 하게 됩니다.

목종도 왕위에 17세에 올랐기 때문에, 어머니인 천추태후가 섭정을 하게 됩니다.

성종시절에 천추태후도 역시 불륜을 들통나서 김치양을 귀양을 보내게 됩니다.

천추태후가 섭정을 하고, 김치양이 복귀를 하게 되면서,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사랑관계가 지속됩니다.

왕순이 12살 때 천추태후와 김치양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천추태후의 또 다른 아들을 보위에 올리고자, 왕순을 승려로 만들어 버립니다.

왕순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내지만, 승려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아들을 보위에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이후에 목종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강조는 서경에서 군사를 이 끌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결곡 목종을 귀양 도중에 시해를 하였고, 김치양과 김치양의 아들 역시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출가를 하였던 왕순을 보위에 앉히게 됩니다.

 

고려거란전쟁 앞부분에 자세하게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천추태후 드마마의 보위에 오른 현종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서 보위에 오른 현종

 

3. 거란의 침입

1009년 3월 2일에 고려의 8대 임금 현종으로 즉위를 하게 됩니다.

강종의 정변으로 현종이 즉위를 하였지만, 모든 권력은 강조에 손아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란이 목종을 시해한 이유로 거란의 2차 침입이 일어나게 됩니다.

즉위 1년 만에 거란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현종은 강조에게 행영도통사를 맡기고 이번 전쟁에 모든 전권을 다 줬습니다.

 

https://malrrr.tistory.com/entry/2%EC%B0%A8-%EC%97%AC%EC%9A%94%EC%A0%84%EC%9F%81%EA%B3%A0%EB%A0%A4%EC%9D%98-%EB%A9%B8%EB%A7%9D%EC%9D%B4%EB%83%90-%EC%83%9D%EC%A1%B4%EC%9D%B4%EB%83%90

 

2차 여요전쟁(고려의 멸망이냐 생존이냐)

1월 7일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서 2차 여요 전쟁이 끝났습니다. 2차 여요전쟁의 영웅을 뽑으라면 당연 양규장군과 김숙흥장군입니다. 바로 왜 거란이 고려를 침략을 하였는지 알아봅시다. 1.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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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여요 전쟁은 위에 블로그에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요나라 군사가 개경까지 함락을 시켰지만, 현종은 나주까지 몽진을 하고, 요나라 성종에게 요나라에 친조를 하러 가겠다고 사신을 보내고, 이에 퇴각을 하게 됩니다.

 

중간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거란은 왜 친조를 안 하냐? , 이에 고려는 곧 친조를 하러 갈 것이다
이에 친조를 안 하니, 이번에는 거란은 강동 6주 반환을 요청하게 됩니다.

도중에 김훈, 최질의 난이 발생이 하지만, 이자림의 계책으로 개경에 반란을 주도 했던 장군들을 서경에서 연회를 한다고 불러들이고, 술에 취한 장군들을 제압을 하면서 반란은 진압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거란의 3차 침입이 시작됩니다.

 

 

https://malrrr.tistory.com/entry/3%EC%B0%A8-%EC%97%AC%EC%9A%94%EC%A0%84%EC%9F%81%ED%95%9C%EA%B5%AD%EC%82%AC-3%EB%8C%80%EC%B2%A9-%EA%B7%80%EC%A3%BC%EB%8C%80%EC%B2%A9

 

3차 여요전쟁(한국사 3대첩 귀주대첩)

고려 거란 전쟁의 마지막인 3차 여요전쟁입니다. 1차 여요 전쟁은 왜 고려는 거란과 국경이 접했는데, 바다 건너 송나라와 외교를 하느냐? 이러한 이유로 고려를 침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서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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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침략은 또 블로그에 따로 3차 여요 전쟁으로 작성한게 있습니다.

이후에는 더 이상 거란의 침입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쟁 이후에는 현종은 내치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일단 여요전쟁으로 인하여, 소실된 고려실록을 재편찬을 하였고,  전쟁을 끝으로 문신들을 대개 등용하게 되고, 

김춘, 최질의 난이 발생을 한 것도 왕권이 약해서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왕권 강화,  지방세력들을 규제를 하면서 중앙집권을 이끌게 됩니다.

성종 때 팔관회, 연동회가 폐지가 되었습니다. 성종은 유교문화를 받아들인 왕이었죠. 

현종 때 다시 팔관회, 연동회가 부활합니다.

현화사와 현화사비를 세워 부모님을 높이 세우고 부모님이 돌아갔지만, 효심이 있었고,

이모인 천추태후를 다시 개경으로 모셔와 살게 하였고, 이후에도 군현제를 실시하여 호족 세력의 규합을 막고, 

고려가 멸망할 뻔 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고려를 다시 부흥시킨 성군입니다.

 

요나라의 역사서 요사에도 현종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요나라 명장들 사이에서도 현종은 꾀가 많고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워 상대하기 버겁다고 높이 평가를 했고

송나라의 역사서 송사에도 

송나라 황제가 요나라의 대항마로 고려를 앞세우기 위해 현종 개인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주변 강대국의 지도자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안긴 군주였다.

당시 요나라, 송나라에 역사서에도 현종을 높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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