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고려 22

여요전쟁이 끝나고 고려, 요나라, 송나라의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993년부터 시작된 여요전쟁, 1019년에 최종적으로 고려의 승리로 끝난 전쟁입니다. 고려는 성종, 목종, 현종으로 이어진 전쟁이였고 요나라(거란)은 성종이라는 요나라에서는 가장 성군이자 정복자인 군주입니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1019년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무찌르고 이후에는 고려, 송나라, 요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아봅시다. 1.사신 왕래 일단 3차 여요전쟁의 승리는 고려였지만, 고려는 항상 경계를 하였습니다. 요나라는 또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기 때문이죠. 고려는 요나라에 사신을 보내게 됩니다. 성종때 1차 여요전쟁 이후로 요나라와 관계를 하고 합니다. 고려는 매년 곡물을 받칠것을 요구하고, 포로들을 풀어주게 됩니다. 결국 거란역시 고려로 사신을 보내어, 관계를 개선 할것을 받아들이고,..

흥화진은 지킨 양규는 어떤 인물인가?

여요전쟁에서 엄청난 공을 세운 장군입니다. 1차 여요전쟁에서는 서희의 담판으로 강동6주를 획득하게 됩니다. 2차 여요전쟁에서는 강동6주 중에 최전방인 흥화진방어를 성공하고, 거란군에게 빼앗긴 곽주성을 탈환 등, 수만명의 고려인포로를 구하고, 거란군이 겁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도륙한 장군입니다. 고려의 맹장 중에 한명입니다. 2차 여요전쟁때 3명의 맹장을 뽑자면 지채문, 양규, 김숙흥정도가 있습니다. 고려사에서는 양규의 기록은 여럿 등장합니다. 고려사 양규열전 "양규가 거란 침략군의 항복 권유를 거부하고 흥화진을 굳게 지키다" 목종을 섬겼고, 차례로 승진하여 형부낭중이 되었다. 이후에 현종 1010년 거란이 강조를 토벌 이유로 흥화진을 포위하였다 양규는 도순검사가 되어 흥화진에서 성문을 굳게 닫고 지켰고, ..

1차 여요전쟁(서희의 담판)

오늘의 주제는 1차 여요전쟁입니다. 여요전쟁이란??? 고려와 거란의 전쟁입니다. 고려(여), 요나라(거란)의 전쟁을 뜻합니다. 요나라(거란)이 고려를 총 3번을 침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려는 3차례 다 방어를 하게 됩니다. 그럼 3차례의 침입 중에 오늘은 1차 침입으로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태조왕건의 거란 배척 태조왕건은 후삼국시대를 통일을 하였습니다. 이때 북쪽은 발해와 거란이 계속해서 전쟁을 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하지만 발해는 거란의 공격이 나라가 무너지게 됩니다. 거란이 고려에 사신을 모내지만 사신들을 모두 유배를 시키고, 거란의 사신들이 가져온 낙타가 있었고, 그 낙타들을 다 굶어 죽게 만들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만부교 사건입니다. 이에 따라 거란과 외교는 단절이 되어 버립니다. 태조왕건..

차기 kbs 사극 - 고려거란전쟁

2023년 11월 약 2달 정도 남았습니다. kbs에서 사극을 한다고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이전에 태종 이방원을 할시 차기작은 고려사로 갈 것이라고 추측은 있었지만, 진짜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올해 11월에 방송을 한다고 합니다. 제목은 고려거란전쟁 입니다. 여요전쟁입니다 당시 후삼국시대을 고려의 태조왕건이 통일하고, 북쪽에는 발해, 거란(요나라)이 있었고,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입니다. 이후에 고려 성종대, 현종대에 거란이 3차례나 고려를 침공을 합니다. 추후에 글을 올리겠지만, 간단하게 여요 전쟁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당시의 고려와 상황 당시 발해와 거란은 만주지역에 패권을 다투고 있었고, 결국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당시에 태조왕건은 거란을 금수지국 즉 짐승만도 못한 나라로 여..

한국의 각 나라별 군주 호칭

오늘은 왕, 황제라고 부르는 국가의 최고, 모든 걸 결정하는 왕 혹은 황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공통적으로 왕, 임금을 사용했습니다. 1.고조선 우리의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에서 첫 국가의 문을 연 단군왕검 고조선은 왕이라는 칭호를 썼습니다. 단군왕검은 이름이고, 단군왕검이 죽고 나서는,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습니다. 2.삼국시대 이제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 임금, 왕을 어떻게 불렀을까요? -고구려 고구려는 태왕이라는 독자적인 군주를 사용하였습니다. 일단 광개토태왕비가 대표적으로 고구려는 태왕을 썼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중원고구려비에서는 고려태왕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백제 백제는 중국의 사서(주서)에 백제에서 사용된 군주명이 나옵니다. 바로 ..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진, 황룡사 9층 목탑

경상북도 경주시, 신라의 문화재이자, 사찰이였던, 황룡사, 지금은 황룡사지(터만 남은 상태)로 불리고 있습니다. 경주에서 가장 컸던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흥왕이 황룡사를 창건하였고, 진흥왕때 장륙삼존불상을 조성하였고, 진평왕때 금당을 조성하였고, 장선덕여왕때 9층탑를 조성하였고, 경덕왕때 종을 조성한 우리의 문화재였습니다. 큰 사찰이니 신라시대때 황룡사에서 국가적인 행사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고려시대로 넘어와서도 광종때 벼락으로 목탑이 손실되자, 60여년간 보수공사를 해서, 다시 재건을 한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몽골군이 한반도를 유린하고, 결국 우리의 문화재를 불태웠습니다. 현재는 모두 불타서, 탑의 초석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경주의 황룡사지를 가면, 박물관에 복원도가 있고, 터만 남..

조선 초기의 명재상-황희

오늘은 조선 초기의 명재상인 황희, 혹은 황희 정승이라고 하죠. 황희를 소개하겠습니다. 고려때 황희 황희는 공민왕 12년에 개경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문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우왕 2년 음서(과거를 안 보고 출신으로 관리를 임명하는 제도) 관직생활을 하였고, 공양왕 때는 대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록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본인은 학문을 공부해서 다시 관리가 된걸 봐서는 좀 이건 아니다, 싶은 거는 아니다.처럼 느껴집니다. 조선 건국 후 황희 태조와 정종 때는 문제가 될 만한 명은 임금의 명령이라도 거부를 했고, 그로 인해 파직과 면천을 했습니다. 위에 고려시기에 음서로 이미 관직을 생활하고 있는데, 과거시험을 봐서 급제를 한 걸로 보아서, 아닌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인물인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태종 이방원의 역사적 평가

사극 태종 이방원도 끝나고, 태종의 대한 평가를 하겠습니다. 조선 건국의 1등 공신 그야말로 조선 건국에 있어서 1등 공신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고려 말기에 가면 신진사대부들이 또 둘로 나눠집니다. 고려를 다시 부강한 나라로 일으켜보자는 온건 개혁파, 온건개혁파에 수장은 정몽주입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급진개혁파, 급진개혁파의 수장은 정도전입니다. 정몽주는 시중에 자리에 올랐고, 이에 정도전,조준,남은 등 급진개혁파가 위기에 있고, 죽을 위기까지 왔을 때,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암살하라고 시킨 이방원은 조선 건국에 있어서 최대의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이후에 온건개혁파는 무너지게 되고, 조선 건국 준비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버지 이성계로부터 버림받은 이방원 조선 건국의 1등 공신인데도..

울릉도의 역사

오늘은 울릉도의 역사는 어떻지 알아보겠습니다. 지금의 울릉도에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울릉도는 경산북도 울릉군으로 되어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9번째로 넓은 섬이고, 면적은 72.86km²가 되고 현재 2021년 12월을 기준으로 8888명이 상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는 9000여명이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8888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의 울릉도에 대해서 알아봤고, 이제 과거의 울릉도는 어떠한 섬이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청동기시대 청동기 시대에는 고인돌, 무문토기 등 청동기 시대에 유물이 발굴되어 울릉도는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삼국시대~조선시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울릉도는 우산국으로 불렸습니다. 지증왕때 신라 장군 이사부를 시켜서 우산국을 정벌하였고, 조공관계가..

고려 원간섭기시대는?

무신정권이 끝으로 여몽전쟁도 끝이 나게 됩니다. 그리고 고려는 원(몽골제국)나라의 간섭을 받게 됩니다. 원나라에 개경환도, 왕의 입조를 계속 요구를 하게 됩니다. 고려는 독립국임을 선언하고, 동시에 원나라에 간섭을 받게 됩니다. 1. 제후국으로 관제 격하 여러분들이 사극을 좀 보신 분들이라면, 무신정권 때까지 우리는 국왕에게, "폐하"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원 간섭기에 접어들자 제후국의 관제를 사용하게 됩니다. 국왕에게 "전하"라고 불렀고, 특히 원 간섭기 때 왕들의 이름을 보면, 충열왕, 충선왕 등등 많은 왕들이 태조, 광종 여몽전쟁 중인 겪은 왕도, 고종, 원종까지 불렀다가 원종의 다음 세대부터 충렬왕이라고 사용합니다. 제후국으로 관제가 격하되면서 왕 이름에 조, 종을 사용할 수 없고, 그냥 왕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