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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선 초기의 명재상인 황희, 혹은 황희 정승이라고 하죠.
황희를 소개하겠습니다.
고려때 황희
황희는 공민왕 12년에 개경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문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우왕 2년 음서(과거를 안 보고 출신으로 관리를 임명하는 제도) 관직생활을 하였고, 공양왕 때는 대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록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본인은 학문을 공부해서 다시 관리가 된걸 봐서는 좀 이건 아니다, 싶은 거는 아니다.처럼 느껴집니다.
조선 건국 후 황희
태조와 정종 때는 문제가 될 만한 명은 임금의 명령이라도 거부를 했고, 그로 인해 파직과 면천을 했습니다. 위에 고려시기에 음서로 이미 관직을 생활하고 있는데, 과거시험을 봐서 급제를 한 걸로 보아서, 아닌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인물인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관직은 태종이 즉위하면서 하게 됩니다.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관직을 맡았습니다. 보통 이러한 관직은 진짜 총애하는 사람에게 주는 관직입니다. 조선 건국 후 여러 공신들이 있지만, 황희는 공신이 아닌데도, 정치적으로도 뛰어난 면목을 보여줍니다. 태종은 황희를 무척 신뢰를 하였습니다.
세자 폐위 반대와 유배
태종때 있었던 일이죠. 바로 양녕대군의 폐위, 양녕대군 폐위를 반대하자, 태종의 노염움을 사, 파직된 후에 유배를 보내게 됩니다.
복직 후 세종의 신뢰
상왕이 된 태종은 세종에게 유배된 황희를 다시 불러들일 것을 권유하였고, 결국 황희는 세종의 의해서 복직하게 됩니다.
복직하게 된 황희는 여러 주요 관직을 하면서 결국 재상 중의 으뜸인 영의정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세종은 황희와 맹사상,윤희 등 세종에게 신임받은 신하들가 조선의 기틀을 만들어 놓습니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영의정을 오래 한 인물입니다. 무려 18년 동안 영의정을 하였고,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 총 24년간 정승의 자리에 앉은 사람입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황희가 너무 늙어서 관직을 내려놓고자 세종에게 은퇴를 하겠다고 하지만, 세종은 계속 거절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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