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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18

이순신의 여섯 번째 출전 "2차 당항포 해전"

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번엔 여섯 번째 출전 2차 당항포 해전를 소개하겠습니다. (경상남도 고성군 당항포) 제2차 당항포 해전 1594년 4월 23일(음력 3월 4일) 이 당시에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삼고수군통제사 자리에 올랐습니다. 즉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해군의 실직적엔 지휘관이였습니다. 즉 오늘날의 해군 참모총장되는 위치였습니다. 왜군은 당항포에서 조선백성들을 약탈,납치,살인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순신은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경상우수영 연합 합대를 구축해서 여섯번째 출전을 합니다. 1594년 4월 23일 총 124척을 출진시키고 어영..

이순신의 다섯 번째 출전 "웅포 해전"

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번엔 다섯 번째 출전 웅포 해전을 쓰겠습니다. 웅포 해전 1593년 3월 12일 ~ 4월 7일 (음력 2월 10일 ~ 3월 6일) 현 경상남도 웅천 1개월간 이순신의 함대와 일본군이 전투를 했습니다. 이때 최초의 상륙전을 합니다. 부산포 해전 승리 이후 일본수군은 다시 재정비를 하고, 웅포해안에서 약 전선100척과 1만여병사들이 재무장을 하였고, 부산포에서도 또 다시 500여척 함선이 정박을 했습니다. 그리고 웅포를 지나야지 부산포를 재 공격 가능하기에 웅포에 있는 왜군들을 먼저 격파를 해야되기에 웅포에서 전투를 하게 됩니다. 이순신은 ..

이순신의 네 번째 출전 "부산포 해전"

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번엔 네 번째 출전 장림포,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초량목, 부산포 해전을 쓰겠습니다. 네 번째 출전 음력 1592년 8월 24일 ~ 9월 2일 네 번째 출진은 왜군의 본거지 부산포를 치기 위해 출전하게됩니다. 조선수군의 목표는 부산입니다. 장림포 해전 1592년 음력 8월 29일(양력 10월 4일) 부산포 진격 중에 소규모 전투입니다. 왜군 전선 6척,왜군 전선 6척 침몰 화준구미 해전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부산포 진격 중에 소규모 전투입니다. 왜군 전선 5척,왜군 전선 5척 침몰 다대포 해전 1592년 ..

이순신의 세 번째 출전 "한산도해전, 안골포해전"

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번엔 세 번째 출전 한산도 대첩과 안골포 해전을 쓰겠습니다. 한산도 대첩 1592년 8월 14일 사진을 보시면 견내량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일본 수군은 서진을 하기 위해서 저곳을 통과해야 되고 조선수군 역시 저곳을 통과해야 내해를 통해 부산으로 진격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서해와 동해에는 밀물, 썰물이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이용해서 일본 수군은 견내량을 통해 서진을 하고자 합니다. 당시 상황이 조선수군이 일본 주둔지로 가서 함대 함대 결전을 합니다. 당연히 일본 수군도 함선에 올라타서 반격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 패배를 하니깐 ..

이순신의 두번째 출전 "사천, 당포, 1차 당항포, 율포 해전"

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번엔 두 번째 출전 사천해전, 당포해전, 1차 당항포 해전, 율포해전이 2번째 출전한 전투를 소개하겠습니다. 사천해전 1592년 7월 8일 이순신의 전라좌수영의 판옥선 23척, 원균의 경상우수영의 판옥선 3척 , 총 26척과 거북선 2척이 출전하였습니다. 사천 선창에 있는 왜군의 정보를 물어 사천으로 추격을 하였습니다. 왜군은 사천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조선수군은 단병접전(창,칼로 싸우는 접전)이 불리하여 처음으로 유인작전을 사용하게 됩니다. 왜 수군은 모두 13척의 함대였습니다. 왜군은 함선에 탑승해서 조선수군을 추격합니다. 그러던..

이순신의 첫 출전 "옥포, 합천, 적진포 해전"

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순신의 첫 출전은 옥포해전 "勿令妄動 靜重如山" 물령망동 정중여산 가벼이 움직이지 마라, 태산과 같이 무거이 움직여라 옥포 해전 전에 이순신의 훈유입니다. 임진년 5월 7일 첫 출전을 하게 됩니다. 옥포 앞바다로 가서 충무공 이순신의 함대와 일본군 도도 다카도라의 해전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 군의 첫 승리였습니다. 임진왜란이 발발 후 전라 우수사 이억기에 전라 좌수영으로 모여 왜군을 격퇴하고자 말했지만, 5월 1일이 되어도 전라 우수사는 움직이지 않기에, 5월 3일 녹도 만호 정운이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 되다고 설득을 합니다. 그..

임진왜란 칠천량해전 패배 후 명령해전

안녕하세요. 오늘은 명량해전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1.왜 분기점인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지휘하던 조선수군은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고 조선의 바다를 수호했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후 선조는 의주까지 피신을 했습니다. 헌데 일본군이 평양성까지 함락시켰고 언제 의주행제소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였기 때문에 조선조정은 이순신에게 하루빨리 일본의 본진인 부산을 공격하라고 명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지금 함대규모로 절대 공격 불가라고 못을 박아버렸고 이 결과 조선수군 지휘관이 교체됩니다. 이때 경상우수사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를 맡게 되는데 이후 무리한 부산공격을 하였지만 별 성과도 없이 퇴각을 하는데 무리하게 진군을 했으니 병사들이 지칠때로 지쳐 결국 칠천도에서 대패를 당하게 되 조선수군은 사실상 ..

전범기(욱일기) 도쿄올림픽때 쓴다는데?

위에 그림을 보셨나요? 1번은 전범기(욱일기) 2번은 하켄크로이츠입니다. 독일 같은 경우는 계속적은 사과를 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의 나라를 일본에게 팔아먹는 민족반역자(매국노)들 자손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을사오적은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그리고 경술국치(한일합방)를 체결한 민족반역자는 이완용, 윤덕영, 민병석, 고영희, 박제순, 조중응, 이병무, 조민희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완용이 있습니다. ​ 과거 일본제국 국군 주의주의를 과거에서 오늘날까지도 일본 육군, 일본 해군이 욱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는 누가 총리가 되든 먼저 사과하고 이웃국가한테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죄송하다고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천황이 사과를 한적도 없고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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