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알아보자

이순신의 세 번째 출전 "한산도해전, 안골포해전"

말랑헤롱 2021. 9. 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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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번엔 세 번째 출전 한산도 대첩과 안골포 해전을 쓰겠습니다.

 

 

한산도 대첩 1592년 8월 14일

 

사진을 보시면 견내량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일본 수군은 서진을 하기 위해서 저곳을 통과해야 되고 조선수군 역시 저곳을 통과해야 내해를 통해 부산으로 진격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서해와 동해에는 밀물, 썰물이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이용해서 일본 수군은 견내량을 통해 서진을 하고자 합니다. 

 

당시 상황이 조선수군이 일본 주둔지로 가서 함대 함대 결전을 합니다. 당연히 일본 수군도 함선에 올라타서 반격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 패배를 하니깐 일본 군도 머리가 있으니 함대 함대 대결이 아닌 일단 육지로 도망간 다음에 상륙하는 조선수군을 공격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한산도대첩은 와키자카라는 일본 수군장수가 과감하게 나는 바다에서 싸워 이기겠다는 생각을 갖고 유인계에 말려들게 됩니다. 견내량을 지나 조선수군을 박살 내려고 했지만 한산도 인근에 매복하고 있는 조선수군이 학익진으로 대응하여 패배를 하게 됩니다.

일본수군은 결국 또 한번의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https://malrrr.tistory.com/99 저번에 쓴 한산도 대첩 글입니다.

 

 

 

안골포 해전 1592년 8월 16일

한산도 해전 이후 안골포에 왜선이 있다는 첩보를 접수했습니다. 18일 새벽에 작전을 수립하고, 또 한번 학익진으로 안골포를 진격을 합니다.

조선수군은 유인작전을 했지만, 일본수군은 더 이상 유인이 당하지 않았으며, 이순신의 함대는 결국 포구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왜선을 격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전사자가 나옵니다. 무려 19명, 부상자 114명이라는 피해를 입습니다.

결국 또 한번에 조선수군이 승리를 하게 됩니다.

왜군의 전사자는 무려 250여명, 전선 42척 모두 격침이라는 전과를 냅니다.

 

세 번째 출전의 결과

 

 

한산도해전, 안골포해전의 결과는 왜군 함대 약 100여척이 3일만에 바다속으로 수장시키고, 더 이상에 해전은 승산이 없다고 여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전 금지령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산도 해전의 승리로 격지의 의병활동들이 일어났습니다.

입진왜란의 결정적 요인 중에 하나가 저는 한산도해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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