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순신의 임진왜란 당시에 23전 23승이란 유례없는 승리를 해서 우리 민족을 다시 살려낸 구국의 영웅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의 전쟁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이번엔 네 번째 출전 장림포,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초량목, 부산포 해전을 쓰겠습니다.
네 번째 출전 음력 1592년 8월 24일 ~ 9월 2일
네 번째 출진은 왜군의 본거지 부산포를 치기 위해 출전하게됩니다. 조선수군의 목표는 부산입니다.
장림포 해전 1592년 음력 8월 29일(양력 10월 4일)
부산포 진격 중에 소규모 전투입니다. 왜군 전선 6척,왜군 전선 6척 침몰
화준구미 해전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부산포 진격 중에 소규모 전투입니다. 왜군 전선 5척,왜군 전선 5척 침몰
다대포 해전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부산포 진격 중에 소규모 전투입니다. 왜군 전선 8척,왜군 전선 8척 침몰
서평포 해전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부산포 진격 중에 소규모 전투입니다. 왜군 전선 9척,왜군 전선 9척 침몰
초량목 해전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부산포 진격 중에 소규모 전투입니다. 왜군 전선 4척,왜군 전선 4척 침몰
부산포 해전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드디어 부산포 앞바다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은 해전 금지령때문에 육지에 상륙해서 조선수군을 상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조선수군은 전선 약 170여척 판옥선74척 협선92척 등
일본수군은 전선 약 470여척, 병력규모는 약8만명 정도
그야 말로 부산포해전은 수군끼리 최대 전략을 가지고 전투를 했습니다.
일본은 육지에서 조선수군의 공격에 대비를 하고 있더는 정보를 얻고 조선군은 장사진을 펼치면서 부사진 포구안으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조선수군은 포구에 방치된 일본군 전함을 향해 집중 포화를 했습니다.
부산포 해전에서 전선 128척을 침몰시키고 일본의 결국 상륙은 하지않고 본영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산포 해전에서 조선군 피해도 상당합니다.
왜군수군은 128척 전선 침몰을 시켰고, 우리 조선수군은 녹도만호 정운을 비롯해 전사자 6인, 부상자 25명,함대피해는 없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부산포에 주둔중인 왜군의 해상 퇴각로를 차단시켰습니다.
부산포 해전의 승리를 기려 부산광역시는 10월5일을 시민의 날을 지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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