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알아보자

양녕대군은 왜 폐위가 되었을까?

말랑헤롱 2022. 4. 1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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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과 원경왕후의 장남으로 이름은 이제입니다.

 

세종대왕의 친형입니다.

 

지금 드라마 태종이방원에서 곧 나올 장면을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양냥대군

세자시절

태종이 왕위의 오르고 장남이던 양녕대군은 세자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태종은 왕권을 강화시킨 장본인이였고, 외척의 세력이 커지는걸 두려워 한 왕이였습니다.

양녕대군은 어릴때부터 원경왕후의 외척에서 자랐습니다. 외척이 힘이 커지는걸 막기 막습니다.

의안대군 이화의 상소는 "민무구,민무질 등 외척이 되어 지나치게 교만하고 방자하다"라는 탄핵상소가 올라왔고, 태종은 국문을 하고, 유배를 보냅니다.

어릴시절 삼촌들이랑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삼촌들이 유배가는걸 보게되고, 원경왕후는 너무 놀라서 병석에 누웠습니다.

이때 원경왕후의 또 다른 동생 민무휼,민무회가 양녕대군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양녕대군은 거절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또 민무휼,민무회도 자결를 하게 됩니다.

이로써 원경왕후의 외척은 모두 죽거나, 유배가 됩니다.

 

이후에 양녕대군은 글보다 사냥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여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자, 결국 태종도 폐세자를 하고, 세자를 다시 책봉하자고 하였고, 이를 반대하는 몇몇 신하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의 명재상이라고 알려진 황희가 있었습니다. 황희는 폐세자를 반대하여 결국 유배를 갔지만, 세종이 즉위하고 다시 조정으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폐세자 이후

폐세자 되고 경기도 이천으로 귀양살이를 하였습니다.

충녕대군이 왕이 되고, 이천으로 유배간 형을 석방을 명했습니다.

세종이 죽자, 왕실의 큰 인물은 양녕대군이였고, 양녕대군은 수양대군을 지지하였고, 이후에 계유정난이 일어나서, 단종을 폐위시키고, 세조가 즉위하게 됩니다.

세조8년 양녕대군은 69세로 세장을 떠나고, 숭례문 현판의 글씨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합니다.

양녕대군이 썻다고 알려진 숭례문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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