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알아보자

흥선대원군의 집권

말랑헤롱 2022. 4. 8. 23:52
728x90
반응형
SMALL

조선 말기 세도정치로 나라의 관리들은 부정부패해지고, 백성들의 삶이 나빠졌고, 이미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즉위시켜며 조정의 중심으로 잡게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

 

흥선대원군 이항응 초상
흥선대원군 이항응의 사진

오늘의 주제는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여 조선을 어떻게 개혁을 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집권 하기전에 이하응

대원군 안동김씨 세도가의 집에 찾아가 좀 부족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철저히 속이고 세도정치 가문에 굽신거리며 살고있었고, 이에 철종이 죽자 후계자가 없어 신정왕후 조씨에게 안동김씨 세력을 꺽자고 하고 이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이항응의 아들을 옹립하게 됩니다.

 

집권 후 흥선대원군의 개혁

이로써 고종을 왕으로 즉위시키고, 고종이 12세의 나이로 일단 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기로 하였으나, 대원군이 살아있기에, 대원군에게세 섭정을 맡겼습니다. 

 

세도가문 축출

일단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력을 축출합니다. 이후에 지역이나 당파에 관계 없이 인재를 등용하고,, 조선 최대의 정치기구은 의정부의 역활을 대신하고 있던 비변사를 폐지하고, 다시 의정부와 삼군부를 부활시켰습니다.

 

 

서원철폐

붕당의 근거지였던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경복궁의 중건

대원군이 왕실 강화목적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증건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백전을 발행하여 물가상승이 있었고, 원납전이라고 강제적으로 기부금을 받았습니다. 궁궐을 짓는데 당연히 돈이 문제가 될것이고, 이후에 백성과 양반들의 원성을 듣게 됩니다.

 

경복궁

 

흥선대원군의 외교

19세기 중반부터 사회가 불안정해지자 천주교와 동학을 믿는 백성들이 많아졌습니다. 

조선는 천주교를 박해하였고, 천주교는 사실상 성리학의 유교사상과 맞지않아 천주교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믿을껀 종교밖에 없으니 종교를 믿게 됩니다.

1866년 1월, 프랑스 신부 9명을 잡아오고, 프랑스 신부 9명을 모두 처형하고, 천주교인 수천인을 박해하였습니다.(병인박해)

같은 해 7월에는 미국 상선인 제너럴셔먼호가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을 타고 평양주민을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자,

평안도 감사 박규수는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고, 선원들이 모두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합니다.(제너럴셔먼호 사건)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이에 살아나은 신부가 중국으로 도망가,  중국의 있던 프랑스 공사관에게 이를 알렸고, 프랑스 군함을 이끌고 와서 강화도를 침략하였습니다. 강화도에 와서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관련 유물을 약탈하였습니다.

 

외교적으로는 계속해서 안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서양세력은 근대화를 하여, 군함을 이끌고 와서 계속되는 개항을 요구합니다.

 

오페르트 도굴 사건

1868년 고종5년때는 고종의 조부이자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가 도굴당할 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묘를 도굴할뻔 했으나, 실패하고 돌아갑니다

 

 

신미양요

제럴널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의 함대가 조선의 강화도를 침략하게 됩니다.

군함5척을 이끌고 와서 강화도를 침략하고, 강화도 수비를 맡은 어재연은 광성보에게 전사를 하고, 미군이 승리하게 되지만, 이후 철수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척화비가 전국에 세워지게 됩니다. 약 200개가 세워졌지만, 오늘날은 30여곳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신미양요

 

 

 

척화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양의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은 것은 화의를 주장하는 것이고, 화의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이를 자손 만대에 경계한다. 병인년에 비문을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

 

 

혐주의(신미양요 광성보의 전멸한 조선군)

더보기

신미양요 강화도 광성보에 전멸한 조선군

 

서원철폐와 경복궁 중건으로 여론은 악화되었고, 이로인하여, 고종의 나이가 20살이 넘자, 대원군 탄핵상소가 올라왔습니다. 결국 대원군은 10년만에 궁궐에서 쫒겨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대원군의 10년 동안 조선은 세도정치에 부정부패를 일삼은 조정을 구해냈고, 조선을 다시 부활시키려고 노력을 한 사람입니다.

다만 외교적으로 개방을 했더라면 좀더 빨리 근대화에 성공하여, 역사가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728x90
반응형
LIST

'한국사를 알아보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라의 삼국통일 평가  (0) 2022.04.15
양녕대군은 왜 폐위가 되었을까?  (0) 2022.04.12
세도정치의 시작  (2) 2022.04.08
울릉도의 역사  (0) 2022.04.07
독도의용수비대의 독도대첩  (0) 2022.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