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태종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과, 셋재아들 충녕대군(세종대왕)과의 갈등을 소개하겠습니다.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에서 4남이 태어났습니다. 그중에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은 먼저 태어났습니다;
양녕대군을 기준으로 효령대군과 2살차이
충녕대군과는 3살 차이가 났습니다.
태종의 즉위 과정
태종이 즉위할 때 태종은 적장자가 아녔습니다.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태종은 무조건 첫째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거 같았습니다.
이방원에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킬 때도, 이성계의 첫째 아들인 이방우는 배제를 하였습니다. 조선 건국의 부정적으로 보고, 이후 조선이 건국되고 술로 시간을 보내다가 일찍 사망하였기에, 둘째 이방과를 일단 세자에 앉히게 됩니다.
이때의 한이 남아있기에, 태종은 일단 첫째가 왕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녕대군은 태종과 많은 갈등은 야기하게 됩니다.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의 갈등
조선왕조실록에도 충녕대군과 양녕대군의 갈등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실록의 기록⬇
태종실록 31권
양녕대군이 옷을 꾸며 입고, 자신의 시중에게 물었다.
"내 모습이 어떠한가?"
이때 충녕대군은
"먼저 마음을 바로 잡은 뒤에 용모를 닦으시기 바랍니다." 말했다. 이에 양녕대군의 시중이 말하길
"대군의 말씀이 정말 옳습니다. 저하께서는 이 말씀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에 세자 양녕대군은 매우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이에 세자가 모비(원경왕후)에게 말하였다.
"충녕대군의 어짊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대사를 장차 함께 논의하겠습니다."
이 말을 태종에게 말하니, 마음이 편안치 아니하였다
양녕대군은 기생 어리를 사랑하여, 여러 번 궁에 들여오곤 하였습니다. 이때 태종에게 걸려서 꾸지람을 듣고, 양녕대군은 충녕대군이 태종에게 어리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충녕대군이 이 일을 태종에게 알렸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에 태종에게 꾸지람을 듣고 나면, 말투와 행동이 바뀌었습니다. 이를 두고 충녕대군은 양녕대군을 타일렀다고 합니다.
이런듯, 세자 양녕대군은 계속해서 태종이 하지 말라는 것만 하고, 서책은 점점 멀리하였고, 사냥과 활쏘기를 좋아하고, 여색을 엄청 밝혔다고 합니다.
기록에 전해 진건 아니지만, 한 가지 썰도 존재합니다.
태종과 원경왕후가 충녕대군이 왕위를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듣고, 이후에 미친 행동을 하고, 스스로 폐세자가 되어 내려왔다고도 전해지곤 합니다.
1418년 6월 어느 날 신료들이 폐세자 상소문이 올라왔고, 양녕대군이 그동안 한 짓을 보고, 결국 태종은 양녕대군을 폐세자를 하게 하고, 충녕대군을 새로운 세자가 됩니다.
이듬해 8월 10일에 태종은 세종에게 양위를 하고, 충녕대군 또한 양위를 거절하였으나, 계속되는 태종의 양위를 받아들였고, 태종은 상왕이 되면서, 군사권은 세종(충녕대군)이 30살이 될 때까지 직접 관리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을 창제하고, 조선 초기의 엄청나게 조선을 번영시킨 인물이고,
한국인들의 존경하는 위인 중에 한 명으로 불리는 세종대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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