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알아보자

뒤죽 속에서 죽은 사도세자

말랑헤롱 2022. 3. 1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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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21대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장헌세자,장조)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영조의 둘째 아들로 영조 25년에 태어났습니다.

영조의 첫째아들은 9살에 죽고, 영조가 나이 40세가 넘겨서 둘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이선(사도세자) 생후 1년만에 세자로 책봉을 받았습니다.

 

세자 시절

세자 시절에는 매우 영특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영조는 세자에게 학문에 열중하라고 시켰고, 어린 나이에 학문에 열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전쟁놀이를 하였고, 영조에게는 거짓말을 고하였지만, 결국 들켜 세자와 같이 전쟁놀이를 한 신하들은 형벌을 받고 죽었습니다.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홍씨의 한중록은 어렸을 때부터 영조로부터 극심한 불안과 꾸준을 들었고, 이 때문에 영조를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영조의 압박감으로 사도세자는 청심환을 먹지 않고는 영조 앞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였고, 한중록에는 공포증과 광증으로 표현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던중에 세자에게 대리청정(왕을 대신해서 정사를 보는것)을 맡기게 됩니다.

영조는 하나뿐인 세자를 호통과 폭언, 폭설을 하면서 계속 대리청정을 시킵니다.

 

그러던 중에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사이에서 이산(정조)가 태어나게 됩니다. 

 

대리청정 기간에는 노론,소론이 있었습니다.

소론을 등용하였고, 노론은 영조에게 세자가 잘못된 정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고했고, 영조는 또 다시 꾸준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노론과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신질환이 오게 됩니다. 오늘날 기록을 본 의사들은 조울증이라고 합니다.

폭행, 성폭행, 살인 등 점점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기록에는 혼자 있으면 폐쇄증이 있다고 하였고, 강박장애가 있어 옷을 여러벌을 지어서 올렸다고 합니다. 

사도세자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강박장애, 불안장애, 충동조절장애, 그리고 정신분열증을 겪게되고 영조를 욕하기 시작합니다.

 

대리청정의 압박과, 노론과 소론의 싸움, 노론의 일파 윤급의 노비인 나경언을 시켜 세자를 고발했습니다.

나경언의 고변은 세자의 비행을 적은 것입니다.

내시들을 죽이고, 정신분열증이 있는걸 고변했지만, 나경언은 참수당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영조와 세자의 갈등을 최고로 몰고 갔으며, 세자를 폐서인으로 강등시키고, 자결하라고 강요했지만, 신하들이 와서 자결을 막았지만, 뒤주를 가지고 오라 하고, 세자는 결국 뒤주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뒤주 속에 8일만에 죽었습니다. 이를 임오화변이라고 합니다.

 

세자가 죽자, 세자의 측근들 까지 처벌을 했습니다.

 

세자가 죽인 뒤 15일만에 다시 복권되었습니다. 사도세자라 복권을 시켰습니다.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일찍 죽었다"

 

처음에는 경북궁 서쪽 사도묘를 지었다가, 너무 화려하더는 이유로 창경국 홍화문 밖에 수은묘라고 했습니다.

훗날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고, 수원 화성에 현륭원이라고 지었습니다.

현륭원

 

 

사도세자가 죽은 원인들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 

영조의 어머니는 궁궐 무수리 출신으로 영조의 최대 약점입니다. 아들을 저렇게 키우지 않겠다는 엄하게 키워서, 사도세자는 영조를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대리청정 기간에 노론을 배척하여, 노론 세력에 윤급의 시종인 나경언의 고변

사도세자의 정신질환

 

의혹들이 이렇게 있습니다. 여러가지 의혹들로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서 8일간 굶긴 상태로 죽을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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