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알아보자

고구려의 최전성기 태왕 - 광개토대왕

말랑헤롱 2022. 3. 2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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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알린 한민족의 최고의 정복군주, 고구려 19대 태왕 광고토태왕에 대해 소개하겠습다.

광개토태왕

광개토태왕은 18세 즉위하여, 39세의 아주 젊은 나이에 돌아갔습니다. 21년동안 고구려 접경 국가들을 대부분 정복하였고,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입니다. 한반도 최초로 연호를 사용한 국왕이였습니다.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광개토태왕은 백제를 공격하였습니다. 석현성 등 10개 성을 함락시키고, 백제의 요새 관미성도 20일만에 함락을 하게 됩니다.

백제의 진사왕이 죽고 아신왕이 즉위하여 빼앗긴 성을 다시 되찾기 위해 고구려를 공격하였지만, 결국 공격은 실패하고,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점령하고, 아신왕에게 항복을 받아주지만, 백제를 멸망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아신왕은 영원한 노객이 되겠다고 선언을 하였습니다.

 

북쪽의 거란, 숙신(말갈,여진족) 공격합니다.

과거 거란족들이 침입해서 고구려의 1만여명 백성들을 되 찾았고, 거란족, 숙신족을 정발하여 동북의 국경을 안전시켰습니다. 이때 아마도 요동을 고구려가 차지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백제는 왜나라를 이용해서 신라를 공격하게 됩니다. 백제와 왜나라는 동맹관계였고, 신라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에 구원군을 요청하게 되고, 약 5만의 대군을 신라로 파병합니다. 왜군을 물리치고, 신라왕을 교체하고 갑니다.

내물마립간에서 실성마립간으로 고체합니다.

그리고 신라는 고구려에게 조공을 받치게 되고, 또 왜군들이 쳐들어와서 고구려가 왜군을 격퇴하게 됩니다.

 

중국의 후연과 국경을 맞이하고 계속되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신라에 군사를 파견할때 후연은 요동을 치게 됩니다. 결국 요동이 후연땅에 넘어갔지만, 고구려는 다시 재정비를 한 뒤에 후연으로 침입하게 됩니다. 신성과 남소성을 탈환하고, 후연의 숙군성을 공격하여 다시 요동을 확보하게 됩니다.

후연은 다시 요동성을 공격하여 요동을 점령하지만, 고구려는 5만 군대를 동원하서 다시 요동을 확보하고, 후연을 견제목적으로 남연과 우호관계를 맺고, 후연이 멸망하고, 고운이 북연을 건국하면서 우호관계를 맺게 됩니다.

 

말년에는 동부여를 정벌합니다. 부여는 요동의 반대쪽에 있던 나라였습니다. 

고구려 전성기

광개토태왕이 위대한건 우리의 같은 민족은 멸망시키지 않고, 굴복을 시켰습니다. 백제,신라,동부여입니다.

하지만, 이민족에게는 가혹하게 제거를 합니다.

 

일단 독자적인 연호 "영락"을 사용하면서 고구려가 천하에 있다는걸 보여줬고, 관직, 불교, 장수왕떄 평양천도를 했지만, 이미 광개토태왕때 천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정복군주이면서 내치도 튼실하게 한 태왕입니다.

 

하지만 젊은 나이 39세에 세상을 뜨게 됩니다.

그의 아들은 장수왕은 광개토태왕비를 세워, 그의 업적을 후대에게 널리 알려주게 됩니다.

 

광개토태왕비

현재 중국의 있는 광개토태왕비입니다.

 

한국사 3대 군주 중 한명인 광개토태왕에 대해서 소개를 했습니다. 다음은 어느 시대의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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