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알아보자

여몽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말랑헤롱 2022. 3. 2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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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려와 몽골의 전쟁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원나라 최대 영토

 

1. 칭기즈 칸의 몽골제국 등장

몽골제국은 칭기즈 칸을 중심으로 점점 모였고, 몽골족을 하나로 뭉쳤으며, 당시의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송나라, 동요(거란), 금나라(여진), 고려로 나눠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몽골제국이 칭기즈 칸을 중심으로 통일을 하였고, 동요, 금나라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 당시 고려는 무신정권 시대입니다.

 

2. 강동성 전투 (고려, 몽골 동맹)

이에 거란족은 다시 후요를 건국하게 하고, 하지만, 몽골제국에 점차 밀려서 고려로 밀려나가고, 결국 평양 근처에 강동성을 함락시킵니다. 이에 몽골, 고려는 동맹을 맺고, 후요를 공격합니다. 강동성 전투입니다. 조충과 김취려 장군은 강동성에서 승리한 후에 다시 고려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이때 몽골제국은 고려에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색을 내고, 이때부터 고려와 몽골 관계는 점점 악화되고 결국 고려가 최악의 암흑기는 여몽전쟁이 시작됩니다.

 

3.저고여 피살 사건(여몽전쟁의 이유)

몽골제국은 저고여라는 장군을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합니다.

형제의 맹약을 맺고, 엄청난 조공을 요청합니다. 고려 입장에서는 북방의 오랑캐가 기어오르고 있으니 고려 입장에서도 난감합니다.

그러던 중에 저고여는 고려의 사신으로 파견되고, 다시 몽골제국으로 갈려던 찰나에,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산적들을 만나서 피살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산적들의 옷은 모두 고려의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고려는 금나라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였지만, 몽골제국은 고려의 말을 묵살하고, 이에 몽골제국은 고려와 모든 국교를 단절하고, 고려를 침략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당시에 상황을 봐도, 누가 고려의 옷을 입고, 고려 땅에서 사신을 죽이겠습니까, 아마도 금나라, 아니면 거란족이 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몽골제국이 침입

 

몽골제국의 1차 침략

몽골의 장군은 실리타이에게 3만의 군사를 주어 고려를 공격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압록강을 건너서 의주, 철주 등을 함락하고, 고려군도 귀주, 자주, 평양 등에서 승리를 하였지만, 남쪽으로 진군한 몽골제국의 군사는 개경을 포위하였습니다.

실리타이는 항복 사신을 보내었고, 이에 고려의 고종은 항복을 받아들이면서 1차 여몽전쟁은 끝이 납니다.

 

 

몽골제국의 2차 침략

1차 여몽전쟁에서 잠시 전쟁을 피하고자 강화를 한 고려, 이에 당시의 무신정권자인 최우는 수도를 강화도를 옮기게 됩니다. 고려의 이 행위를 보고 몽골제국은 다시 실리타이에게 고려를 재침하라고 명령을 합니다. 고려는 끝까지 항전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경의 홍복원(고려의 무신이었지만, 몽골제국이 침입하자 몽골제국의 길잡이를 함)을 앞세서 개경을 함락시키고, 남경(서울)도 함락하고 계속 몽골제국은 남하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강화도로 계속 항복을 권유했지만, 고려는 항전할 각오로 천도를 했으니 항복은 안 했습니다. 이에 실리타이는 처인성(용인)으로 공격하였지만, 몽골제국의 실리타이는 스님 김윤후에 화살에 맞아 전사하게 됩니다. 이에 몽골제국은 총대장을 잃었고, 사기가 저하되었으며, 퇴각을 하게 됩니다.

처인성 전투

 

 

 

 

몽골제국의 3차 침입

금나라를 결국 멸망시키고, 남송을 공격하는 길에 몽골제국의 장군은 탕우타이에게 고려를 공격하라고 또 명령을 했습니다.

이때 황룡사 9층 목탑도 파괴되었습니다. 함경도, 황해도, 경기도뿐 아니라, 3차 침입에서는 대구, 경주, 경상북도까지 몽골제국의 군사들이 갔습니다.

고려 조정은 끝까지 저항을 하였고, 이에 팔만대장경의 제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몽골군이 계속 항복을 권유하였고, 육지에서 몽골군의 만행에 못 이겨, 결국 고려의 왕이 입조를 하는 조건으로 강화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입조는 안 했습니다. 당시 고려의 고종은 왕이 아프다는 핑계로 입조를 안 했고, 왕족을 입조 하게 하였습니다.

 

 

몽골제국의 4차 침입

고려는 3차 침입에서 강화조건은 고려 왕의 입조, 개경으로 다시 천도 조건이었습니다.

고려는 이를 지키지 않은 이유로 다시 몽골제국의 장군은 아무칸에게 군사를 주어 고려를 치게 합니다.

하지만, 몽골제국의 왕이 죽자, 후계자 문제가 고려에 조정에도 알려지게 되고, 고려는 먼저 철수를 하면, 입조를 하겠다 약속을 하고, 몽골 군대는 철군을 하게 됩니다.

 

 

몽골제국의 5차 침임

고려는 또 입조를 안 한 이유로 다시 공격을 하게 됩니다.

고려는 다시 강화도에서 항전을 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강화도를 굳게 지켰습니다. 이에 원나라(몽골제국) 군대는 철원, 춘천, 양주, 양양 강원도를 공격하고, 충주까지 공격을 하게 됩니다. 충주성은 끝까지 함락을 못 시키고, 원나라 장군 에케는 병을 이유로 철군하게 됩니다.

 

 

몽골제국의 6차 침입

몽골제국의 칸은 왕자의 입조만 만족하지 못하고, 무신정권의 최항과 왕의 입조를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다시 자랄타이에게 군대를 주어 침략하게 됩니다.

몽골군은 한반도의 전국을 휩쓸고 충주성, 상주 산성을 공격했지만, 함락에 실패하고, 지랄타이는 본국에서 철수 명령이 나와서 철수를 하게 됩니다.

6차 침입에서 포로만 약 20만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사망자도 많이 나오게 됩니다.

 

 

몽골제국의 7차 침입

다시 한번 지랄타이를 대장으로 하여, 고려의 인질로 갔던 영냥공, 홍복원을 대동하여 침입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전라도 지역을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강화도를 공격하고자 하였는데, 몽골에 갔던 김수강이 몽골의 칸을 설득하여 결국 7차 침입도 철수하게 됩니다.

 

 

몽골제국의 8차 침입

몽골에 보내던 세공을 중단한 이유로 다시 한번 지랄타이에게 군사를 주어 고려를 침입하게 됩니다.

고려는 김수강을 다시 사신으로 보내어, 출륙과 친조(출륙은 강화도에게 다시 개경으로 돌아오겠다는 뜻)를 조건으로 먼저 철군을 하면 다시 입조를 하겠다는 하여, 8차 침입을 막아냈습니다.

 

 

몽골제국의 9차 침입

이때 고려는 무신정권 최 씨 집권기를 끝나고 김준이 정권을 잡은 상태입니다. 몽골은 고려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있지만, 고려의 태자가 오지 않자, 지랄타이에게 다시 공격을 명령합니다.

지랄타이에게 사신을 보내어 다시 한번 회견을 하게 됩니다. 왕의 출륙과 입조를 약속하고 먼저 태자를 입조를 하게 시켰고, 고려의 고종이 죽자, 태자는 고려로 돌아와서 즉위하게 되고, 다시 그의 태자를 몽골에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개경으로 환도하고, 이때부터 몽골의 간섭기 시작됩니다.

 

 

결국은 무신집권기를 끝장내고, 원나라의 제후국이 되어 버립니다. 고려는 고려의 풍습을 그대로 이어나갈 수 있게 되고, 관제도 다 격하를 해서 사용하게 됩니다. 왕을 부르는 칭호는 폐하를 전하로, 태자를 세자로 모두 격하해서 사용하게 됩니다.

고려의 원종 때부터 원나라에 간섭을 받게 되고 원종의 뒤를 이어 원나라에 부마국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고려의 왕사 중에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이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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