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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민왕, 원간섭기를 몰아내고,개혁을 한 고려의 31대 왕

말랑헤롱 2022. 3. 2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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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과 노국공주

충숙왕의 아들이고, 충혜왕의 이복동생인 공민왕입니다.

 

공민왕도 일찍이 원나라에 입조를 하였습니다. 입조를 하여, 원나라 황족인 노국대장공주를 아내로 맞이했고, 일전에 충을 가진 임금들은 원나라에서 온 왕비와 사이가 안좋았지만,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금술이 좋았다고 합니다.

 

고려의 상황은 권문세족과 외척(친원)세력의 전황으로 왕권이 아주 불안하였습니다. 그러인해 원나라에서 충정왕을 폐위시키고, 공민왕을 새로운 고려의 국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원나라에서 생활을 하였기에 원나라가 쇠퇴하는걸 보고 반원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첫번째 개혁,  무신독재권력 혁파

무신정권이 이미 없어졌지만, 최충헌의 아들인 최우가 만든 정방이 그대로 존재하였습니다. 정방을 폐지하고, 무장세력들을 견제를 하였습니다. 

 

 

 

기황후

두번째 개혁, 병신정변,부원배 처단(친원 세력)

원나라의 연호와 관제 사용을 폐지하고, 원나라의 풍습인 변발과 호복사용을 전면 금지하였습니다.

기황후를 알고 있나요? 고려의 원나라가서 황후까지 한 인물입니다. 이 기씨일파를 중심으로 권세를 부른 부원배를 처단하였습니다.

 

 

공민왕때 수북한 영토

세번째 개혁, 쌍성총관부 수복

공민왕이 반원세력을 축출하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쌍성총관부에 있던 영토를 수복하였습니다.

고려 조정은 조돈과 이자춘(이성계의 아버지)를 통해서 공격하였고, 고려 조정에 전면적을 등장하게 됩니다.

결국 이성계는 고려 최고의 벼슬인 시중까지 올라가게 되고,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

 

네번째 개혁, 신진사대부의 등용

이 당시에는 권문세족들이 부원배들이랑 권력을 나눠먹고 있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성균관이 지어지고, 이색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 유교를 공부한 사람들을 대거 기용합니다. 정치적으로 기반이 약하였지만, 이후에 고려말기에는 권문세족은 없어지고, 신진사대부의 고려를 지키자는 입장과 고려를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대립양상이 나옵니다.

 

 

 

이렇게 성공한 개혁도 있었으나. 실패한 개혁도 많이 있습니다.

노국공주가 죽자 신돈을 등용해서 모든 국사를 신돈에게 맡기게 됩니다.

신돈은 무장세력과 권문세족을 물러나게 하고,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성균관을 중용하여, 신진사대부를 성장시켰습니다.

이러한 개혁들로 권문세족들은 신돈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고, 결국 신돈은 공민왕이 다시 친정을 하게 되고, 결국 유배를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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