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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은 어떻게 멸망했을까?

말랑헤롱 2021. 11. 1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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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고구려 멸망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수나라 멸망, 당나라의 빠른 건국

수나라에 반란으로 망한고 이 당시에도 중국에서는 각지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질적인 당나라 창업자 이세민(당나라 2대 황제)은 이연(당나라 1대 황제)에게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는 장안을 함락시켜야 된다는 조언을 받고, 곧장 수나라의 수도인 장안성은 함락시키고,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결국 폐위시키고 당나라를 건국합니다. 이는 이연(당 고조)는 수나라 황실과 이종사촌 관계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당시 이세민은 자신의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됩니다. 이를 현무문의 변이라고 합니다.  

당 고조는 즉위하고 자신의 첫째 아들을 이건성에게 다음 왕을 계승할 태자로 앉히게 됩니다. 이를 두고 이세민이랑 많은 갈등을 하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당나라 창업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이세민을 태자를 줘야 되는데, 당 고조는 첫째 아들에게 태자 자리를 주게 됩니다.

결국 수도 장안성의 현무문에서 이세민은 자신의 형제를 죽이고 왕에 오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당태종 시절을 정관의 치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태평성대를 이루게 됩니다.

 

 

 

영양왕의 죽음, 영류왕(고건무)의 즉위, 연개소문의 쿠데타

이때 고구려역시 영양왕이 죽고, 그의 동생인 영류왕(고건무)이 즉위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류왕은 수나라의 전투에서 지쳤기 때문에 신생국가인 당나라와는 유화정책을 합니다. 이때 수나라 전쟁포로를 돌려주거나, 일부러 고구려는 머리를 숙이고 제후국가임을 인정합니다. 

이 당시에 연개소문은 힘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이런 태도를 못마땅했습니다.

결국 연개소문은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죽이고, 그 외 영류왕을 지지하는 신하들을 모두 죽이고, 보장왕을 옹립하고 자신은 대막지리(현시대 총리)에 올라 자신이 보장왕 대신 국정을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대당강경책으로 당나라와 적대행위를 하게 됩니다.

 

 

1차 고당 전쟁

당나라는 연개소문의 정변으로 전쟁준비를 하게 됩니다. 고구려 역시 당나라가 언제 침략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전쟁준비를 하게 됩니다.

고구려는 1차 방어선 요동, 2차 방어선 압록강을 필두로 전쟁준비를 하게 됩니다.

1차 침략 때 당나라의 규모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대략 30만 전후 병력으로 추정이 됩니다. 수나라의 전쟁 때는 어느 한 곳도 함락을 못 시켰지만, 당나라는 많이 다른 양상을 하게 됩니다.

이세적이 이끄는 요동도행군은 현도성을 함락시키고, 이어 개모성을 함락시킵니다. 그리고 요동도행군은 본진으로 합류하여 요동성 공격을 도와주게 됩니다.

이세민이 이끌고 있는 당나라 주력군은 요동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킵니다.

수군은 비사성 공격을 하여 빠르게 함락시킵니다.

백암성은 내부 반란으로 성주 손대음은 항복을 하게 됩니다. 이는 고구려 입장에서는 치명적입니다.

계속해서 신성과 건안성을 공격하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필산 전투에서는 고구려 약 4만 명이 항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 요동지역 성들을 함락은 당나라는 안시성으로 가서 최후의 전투를 하게 됩니다.

당군은 안시성을 계속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밤에는 고구려군이 야습을 강행하고 결국 이도종이 토산을 쌓을 것을 건의했고, 당나라는 토산을 만들었지만, 결국 폭우 때문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장기전에 되어버렸고, 날씨가 추워지자 퇴각을 하게 됩니다. 퇴각한 이세민은 고구려 침공을 후회하게 됩니다.

 

 

 

 

2차 고당 전쟁

신라는 당나라의 연합군을 편성하여 백제를 멸망시킵니다. 이 당시에 나당 동맹(신라, 당나라) 그리고 여제 동맹(고구려, 백제) 양상을 띄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나라는 요동에 군사를 보내서 백제를 도와주지 못하게 막고, 당나라 수군 소정방의 13만 대군을 출병시켜 백제를 멸망시키고 이제 고구려 혼자 남쪽의 신라, 요동의 당나라를 막아야 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1차 고당 전쟁과 비슷한 양상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 당나라는 대부분 수군 주력으로 바다를 건너 상륙하게 됩니다. 요동에는 기존처럼 싸움은 최대한 피해고 지원군을 보낼 수 없을 정도로 군대 파견하게 됩니다.

일단 소정방의 평양도행군은 평양성을 포위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합니다. 하지만, 평양성은 3중 구조로 된 성이라 외곽을 함락시켜도 외성, 외성을 함락시켜도 또 내성이 존재하는 구조로 함락이 어려웠습니다.

 

육상을 주력으로 하는 요동도행군은 압록강에서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이랑 맞서 싸웠지만, 결국 연남생은 패배하게 되고, 서북지역에서 철륵이 반란을 일으켰고, 당나라의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옥저도행군 방효태, 패강도행군 임아상를 사수 지역에서 뼈저린 패배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2차 고당 전쟁도 고구려가 승리를 합니다.

하지만, 이미 4차례의 고수 전쟁, 1차 고당 전쟁, 2차고당 전쟁으로 국력은 많이 소모된 상태입니다.

 

 

 

3차 고당전쟁

연개소문의 아들이 죽고 연남생이 대막리지에 앉게 되지만, 그의 또 다른 아들 연남건, 연남산이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연남생은 당나라에 투항하였고, 연남건이 대막리지에 오르게 됩니다.

이미 연개소문이 죽고 아들들의 싸움을 하게 됩니다. 이 시점으로 고구려의 멸망 조짐이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고구려 남부를 지키다가 결국 신라에 투항해버렸습니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이러한 내부 사정을 보고 3차 고당 전쟁을 일으킵니다.

667년 대총관 이세적을 대총관으로 하여 당나라의 모든 전략을 고구려 침공에 쏟아 붙습니다.

신성이 함락되고, 주변에 여어 성들 또한 당나라 군사에게 항복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하에 있던 고구려군 5만여 명이 금산에서 당나라군과 싸워 이기는 양상을 보였지만, 설인귀의 공격으로 고구려군 5만여 명이 전사하게 됩니다.

요동의 성들을 하나하나 함락시키고, 평양성까지 포위하게 됩니다.

이때 신라의 군대도 합류하게 됩니다. 나당연합군은 평양성을 포위하고 계속 공격을 하게 됩니다. 이에 보장왕은 연남산으로 하여금 항복을 했습니다. 하지만, 연남건은 끝까지 싸우게 성을 지켰지만, 승려 신성은 평양성 성문을 열여 당나라에 평양성을 함락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고구려의 약 700년 역사는 이렇게 문을 닫게 됩니다.

고구려의 멸망이 고조선이랑 많이 비슷합니다. 

고조선은 성기가 끝까지 지키지 자고 했는데, 성기를 암살해서 왕검성이 함락되었고

고구려는 3차례의 침입을 막아냈지만, 연개소문의 아들들의 내전, 그리고 승려 신성의 배신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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