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알아보자

백제은 어떻게 멸망했을까?

말랑헤롱 2021. 11. 1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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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제는 백제 멸망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백제는 가장 빨리 한강유역을 차지했던 국가였고, 근초고왕은 마한의 일부, 탐라(제주도)를 복속시켰고, 북으로는 고구려의 침공을 막고, 고구려의 고국원앙을 전사시켰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산둥지역, 일본의 큐슈지역과 무역을 시작했고, 가장 빨리 발전을 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즉위하고는 수도인 위례성을 버리고 웅진로 옴기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은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무왕(의자왕의 아버지)때 잠시 국력을 회복시켰으나 의자왕의 사치와 항락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1.당나라의 후방 지원 요청

고당전쟁때 신라, 백제(이 두 국가는 당나라에 제후국임을 인정)가 고구려의 후방을 공격하라고 원군을 요청헀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의 요청대로 고구려군을 공격했고, 백제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이때 백제는 신라를 공격하게 됩니다. 결국 고당전쟁이 끝나고 백제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결국 나당동맹이 결성됩니다. 

 

2.나당연합군의 침공

결국 나당연합군이 백제로 공격를 공격합니다. 당시 백제의 상황은 의자왕은 사치와 항락에 빠져, 국정을 들보지 않았고, 신하의 간언을 무시하며,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 신하는 귀향을 보내거나 숙청을 했습니다. 이렇게 백제는 점점 헤어나올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당나라가 다시 침공을 할것 같다고 백제에 알렸지만, 백제는 대응을 안하고 있었습니다. 고구려로 갈것이라고 너무 단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정방의 13만 대군은 백제 기벌포에 상륙했고, 김유신의 신라군 5만 명은 고구려 가는 척 하고 황산벌로 공격하게 됩니다.

 

3.황산벌 전투

황산벌 전투는 유명한 전투입니다. 

신라의 김춘추 백제의 계백의 싸움으로 유명하죠. 계백은 출전하기 전에 자신의 아내, 자식들을 죽이고 약 5천 여명의 군사를 데리고 황산벌로 향하게 됩니다.

숫자만 봐도 신라의 5만여명, 백제의 5천여명, 10배 차이입니다.

하지만, 백제군은 작은 전투에서 4명 승리합니다.  하지만 김유신의 전술에 계백은 당하고 백제 5천여명 군사는 전사가 되고, 김유신은 사비성으로 항합니다.

 

4.백제의 멸망

당나라 소정방의 13만, 김유신의 신라군 5만이 사비성을 함락시킵니다. 이 때 의자왕과 부요효는 웅진성으로 도피하고, 그의 아들 부여태가 사비성을 지켰지만, 하루만에 항복하고, 부여용, 좌평 사택천복 등이 신라에게 항복하게 됩니다.

웅진성으로 도망갔지만, 그의 신하 예식진의 배신으로 결국 웅진성도 함락되고 백제는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백제는 온조왕 부터 시작해서 31대 의자왕으로 국가의 문을 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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