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당나라와 손을 잡고 삼국통일을 했지만,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뺏을 생각을 한 나라였습니다.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당나라는 신라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계림 도독부를 설치해여 신라의 문무왕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한다는 정책이었습니다.
고구려에는 안동도호부, 백제는 웅진도독부, 신라는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나당전쟁이 일어났고, 기벌포,매소성에서 승리한 신라는 대동강부터, 원상만(강원도 원산시-현재 북한 영토)까지 넓혔습니다.
그러면 신라는 어떻게 멸망을 하였을까요?
1.다시 열리는 삼국 시대
정확하게 말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아닌 후고구려,후백제,신라로 다시 삼국이 분열이 됩니다.
진성여왕대 이르러 신라의 국고는 텅텅비게 되고, 관리를 보내서 세금을 징수 요청을 하자, 원종과 내노의 난으로 전국적으로 군벌, 호족세력들이 봉기를 하게 됩니다. 옛 삼국을 부활시키는 명분으로 궁예는 후 고구려, 견훤은 후백제를 세우게 됩니다.
견훤은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세우고, 의자왕의 복수를 하겠다는 명분으로 후백제를 세우게 됩니다.
궁예는 기훤부하였는데, 기훤이 애꾸눈이라 멸시를 하자, 양길의 수하로 들어가게 됩니다. 양길의 신임을 받고 여러 성들을 점령을 합시다. 지금의 황해도, 평안도 쪽을 점령해서 호족들을 흡수하게 되고, 양길과 비뇌성전투에 승리하게 되어,
후고구려를 세우게 됩니다.
2.후고구려 vs 후백제의 전투
일단 두 국가는 서로 세력 확장이 힘을 쓰게 됩니다. 후고구려는 철원을 수도로 주변 호족을 흡수하고, 견훤은 완산주(지금의 전주시)를 중심으로 주면 호족들을 흡수하게 됩니다.
점차 확장을 하니, 이제는 전쟁밖에 안남게 됩니다.
결국 백제는 대야성 공격을 하지만, 대야성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궁예의 왕건은 나주를 칠 것을 건의하고 수군으로 나주를 치게 됩니다. 후고구려의 나주 공격은 성공적으로 끝나게 됩니다.
3. 궁예의 몰락과 왕건의 고려 건국
궁예는 미륵이라는 존재로 후고구려를 건국하였고, 이후에 마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궁예는 관심법으로 사람들을 죽이게 됩니다. 궁예는 점점 미친 사람이 되고, 관심법으로 자신의 아내와 왕자들을까지 죽이게 됩니다.
드라마 태조왕건을 보시면 알게 됩니다.
당시에 왕건은 나주공방전,견훤과의 전투에서 승리, 내정에도 상당한 능력을 발휘해서 궁예는 왕건을 시중 벼슬을 받게 됩니다.
궁예의 폭정을 본 신하들은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고려의 개국공신 4인방)은 왕건에게 지금의 왕은 포악하니 나라를 다스릴수가 없으니 시중이 왕위에 올라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궁예를 몰아내고, 철원성에서 고려 건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4. 후백제와 전투
고려가 건국되고 여러 번의 전투가 있었습니다. 조물성 전투는 후백제가 우위를 점했지만, 고려는 성을 끝까지 지켜내고 그 상황이 지속되어 인질을 교환하게 됩니다. 결국 조물성 전투에서는 승무가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고려에서 후백제 인질을 1년만에 죽이게 됩니다. 이리하여 고려의 인질도 죽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다시 전쟁을 하게 됩니다.
견훤은 신라정벌을 감행합니다. 신라의 수도로 후백제 군사가 들어가서 견훤은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경애왕을 자결하도록 만들고, 경순왕을 새 신라의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건은 신라로 출전하게 됩니다.
고려는 대구 공산에서 대기를 타고 있다가 순간 공격하는 전략을 세웠지만, 후백제는 이를 알고 역으로 기습공격을 하였습니다. 왕건은 이때 최대의 패배를 하게 됩니다.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은 왕건을 대신에 목숨을 잃게 되고, 장수 김낙, 전의갑, 전이갑 형제도 이때 전사를 하게 됩니다. 왕건은 간신히 탈출하게 되며, 여러 면 전투를 하지만, 고려는 대패를 당하게 됩니다.
이후에 고창전투(현 안동)에서 고려의 승리하여, 이 승리가 사실상 후삼국전투중에 결정적인 요인을 하게 됩니다. 후백제는 왕권다툼있었습니다. 신검, 양검, 용검, 금강의 자식들이 있었습니다. 견훤은 이 중에 넷째 아들 금강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견훤의 장남은 신검은 쿠데타를 일으켜,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키고, 금강을 죽이고 후백제의 2대 왕이 됩니다.
견훤은 이때 엄청난 울분을 터뜨렸고, 반드시 금산사를 탈출해서 자신의 아들 신검에게 복수를 다짐하였고, 결국 금산사를 탈출하여, 고려의 영향권이 있는 나주에 도착하고, 고려 조정에 입조 하게 됩니다. 왕건은 견훤에게 깍듯이 대하며 어른처럼 모셨다고 합니다.
4. 후백제의 멸망 일리천 전투
견훤이 고려에 투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후백제의 많은 호족세력은 후백제를 배신하고 고려에 투항하기로 하였습니다. 왕건은 약 10만의 병력으로 후백제를 침공합니다. 견훤은 아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간곡히 요청해서 함께 출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후백제도 전군사를 끌어모아 전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후백제 군사들은 견훤을 보고 전투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하고, 후백제 군들은 방황을 하게 되고, 견훤의 사위인 박영규는 전투가 시작되면 배반하기로 고려군과 약속을 했습니다. 이는 전쟁 시작부터 후백제의 패배가 결정되는 겁니다.
후백제는 멸망을 하게 됩니다.
5.신라의 멸망
후백제의 견훤은 935년 6월 경에 금산사를 탈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도 935년 11월에 고려에 항복하게 됩니다.
신라는 결국 고려의 항복하게 되어, 1000년의 역사를 고려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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