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알아보자

고구려-수나라 전쟁사

말랑헤롱 2021. 11. 12. 20:26
728x90
반응형
SMALL

이번 주제는 고구려는 어떻게 멸망했을까는 주제입니다.

 

앞서 고조선이랑 비슷하게 멸망하게 됩니다. 

 

고조선은 한나라(중국), 내부 반란으로 멸망하게 되고, 고구려도 당나라(중국), 신라 내부 반란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마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고조선이랑 고구려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고구려 멸망 직전에 고구려, 수나라 전쟁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계속되는 전쟁

당시에 중국은 한나라가 멸망하고 위, 촉, 오로 삼국이 존재하다가 오호십육국 시대에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넓혔습니다. 그러던 중에 수 제국이 한 국가, 한 국가를 멸망시키고 또 통일왕조를 세웁니다. 
수나라는 여러 나라를 제후국가로 만들었지만, 오직 고구려만큼은 수나라는 신생국가라서 엎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고구려 영양왕이 수나라를 먼저 선제공격합니다. 

 

1차 고수전쟁

고구려, 말갈에 1만 병력으로 요서지방을 쳐들어 갑니다. 이에 수나라 문제(수나라 1대 황제)는 30만 군대를 보내서 대응을 하지만, 알 수 없는 태풍, 장마도 30만 대군은 싸움도 못하고 대다수가 전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사신을 보내 휴전상태를 유지했습니다.

 

 

2차 고수 전쟁

수나라 2대 황제 양광(문제의 둘째 아들)이 즉위하게 됩니다. 수문제는 즉위하자마자 대 공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만리장성을 다시 보수하고, 대운하를 건설하게 됩니다. 지금의 대운하는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잘 만든 공사입니다.

그리고 서방을 정벌하고, 북방의 돌궐까지 정벌하여 통일왕조의 위엄을 보여줍니다. 고구려는 이를 보기 긴장한 채 전쟁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612년 2차 고수 전쟁이 일어납니다.

수나라의 병력은 약 113만 명의 엄청난 대군이었습니다. 

 

요하 전투에서 부교를 덜 만들어서 실패합니다. 이에 고구려군이 화살을 날려 승리를 합니다. 이후에 제대로 부교를 만들어서 요하를 건너서 요동성으로 오게 됩니다.

 

요동성 전투

수나라 양제는 요동성을 중심으로 여러 고구려 성들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하게 됩니다. 수개월간 전투를 했지만, 고구려 성 어느 한 곳도 함락못기시게 됩니다.

결국 수나라 대군은 요동성 앞에 발목이 잡히게 됩니다.

 

평양성 전투

그러던 중에 평양성에서 수나라 장군 내호아가 12만의 병력을 가지고 평양 근처에 상륙하게 됩니다. 이 당시에 별 동군 30만이 평양성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내호아는 결국 별 동군 30만이 오기 전에 평양성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에 고건무(영류왕)가 매복 작전으로 내호아의 수군 4만 병력은 모두 전멸하게 됩니다.(수군 12만 중에 약 5만이 주력군이고 나머지는 물자이동,배의 관련된 인원입니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수나라는 어느 한 곳 점령을 못하자 30만 별동군을 투입해 바로 평양성으로 수군이랑 힘을 합쳐 평양성 함락을 하라고 우중문을 총사로 하여금 출전을 하게 됩니다.  별동군은 100일분의 군량에 무기 등을 합께 소지하고 갑니다.

하지만, 병사들은 무거운 짐을 하나씩 버리게 되고, 결국 군량도 다 떨어지게 됩니다.

이에 을지문덕은 수나라에 거짓 항복을 하겠다고 말을 하고, 시간을 계속 끌게 되고, 싸우다가 후퇴하는 전력을 써서, 별동군은 평양성에 도착하지만, 수군이 이미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을지문덕은 여수장우중문시를 보내고 우중문은 결국 철군하게 됩니다. 이에 을지문덕은 살수에서 30만 대군 중에 약 29만여 명을 죽이는 대승을 하게 됩니다.

 

결국 수나라는 전군 철수하게 됩니다.

 

수나라 양광은 계속해서 고구려를 침공하지만, 3차 침공 때는 예 부상서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의 친구인 곡사정은 고구려에 망명하게 되고, 수나라의 전략을 다 아는 인물이 망명했기에 철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4차 침입을 하지만, 수나라는 곳곳에서 이미 반란이 시작되었고, 고구려도 이미 많이 지친 상태이기에 3차 침입 때 망명한 곡사정을 수나라에 다시 보내고, 화친을 제의합니다. 그에 수나라는 받아들이고 이미 갈 곳을 잃은 양광은 강도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합니다.

 

이렇게해서 고수전쟁은 사실상 고구려의 승리이지만, 고구려도 이때 많은 국력을 소모한 상태입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