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명량해전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1.왜 분기점인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지휘하던 조선수군은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고 조선의 바다를 수호했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후 선조는 의주까지 피신을 했습니다. 헌데 일본군이 평양성까지 함락시켰고 언제 의주행제소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였기 때문에 조선조정은 이순신에게 하루빨리 일본의 본진인 부산을 공격하라고 명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지금 함대규모로 절대 공격 불가라고 못을 박아버렸고 이 결과 조선수군 지휘관이 교체됩니다. 이때 경상우수사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를 맡게 되는데 이후 무리한 부산공격을 하였지만 별 성과도 없이 퇴각을 하는데 무리하게 진군을 했으니 병사들이 지칠때로 지쳐 결국 칠천도에서 대패를 당하게 되 조선수군은 사실상 괴멸을 당합니다. 이로서 일본수군은 남해바다의 재해권을 장악합니다.
2.12척의 배는 어디서?
원균이 부산으로 진격할때 당시 경상우수사 배설이 이끄는 판옥선12척을 끌고 탈영을 하게 됩니다. 이순신이 이후에 통제사로 부임하고 이 12척의 배를 이끌게 됩니다.
3.좁은 협수로를 전장으로 선택
이 곳이 바로 울돌목(명량(鳴梁))입니다.
일본군이 순조류를 타고 진군합니다.
조선12척 함대는 파랑부분에 진을 치고 죽기살기로 일본군과 전투를 벌입니다.
협수로가 좁기에 300여척이 한번에 진군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결국 일본군이 유리한 순조류가 역조류로 바뀌면서 전황은 바뀌고
조선은 이를 이용해 역으로 진군을 하면서 일본함선을 박살냅니다.
명량해전 자료는 다시 찾아보고 책으로 읽어도 너무 말도 안되는 전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지형지물을 이용한다고 해도 12척으로 300여척을 막는건 불가능인데 그 불가능을 실현시켰고 결국 명량해전 이후 해상은 다시 조선수군으로 돌아왔으며 이후에 수군재건을 하고 마지막전투인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어서 결국 임진왜란은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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