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고 고구려의 부흥운동인 보덕국에 관련된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때는 668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함락하게 됩니다.
결국 BC37년 초대 군주인 동명성왕(주몽)이 고구려를 열였고, 마지막 군주 28대 보장왕으로 나라의 문을 닫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나라가 망하고 부흥운동을 하게 됩니다.
고구려 멸망 이후 보덕국, 소고구려, 발해, 후구고려, 고려 역시 그렇고 백제도 백제부흥운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멸망하고는 목숨을 걸고 독립군을 창설해서 일본에게 끝까지 저항을 하였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조, 신라왕조 기록
六月 高句麗水臨城人牟岑大兄 收合殘民 自窮牟城 至浿江南 殺唐官人及僧法安等 向新羅行 至西海史冶島 見高句麗大臣淵淨土之子安勝 迎致漢城中奉以爲君 遣小兄多式等 哀告曰 "興滅國 繼絶世天下之公義也. 惟大國是望, 我國先王以失道見滅今臣等得國貴族安勝 奉以爲君 願作藩屛
고구려 멸망 이후 670년 고구려 사람인 대형 검모잠이 고구려 유민들을 모어 궁모성으로부터 패강 남쪽에 이르러 당나라 관리와 당나라 승려 법안을 죽었다. 신라로 향하던 중 왕족인 고안승을 만나서 그를 왕으로 삼고, 신라에게 고하였다.
"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대를 잇게 해주는 것은 천하의 공평한 도리이니 오직 대국이 그렇게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고구려는 멸망당핬으니, 그의 고구려 귀족인 안승을 받들어 군주로 삼았습니다. 바라옵건대 신라의 울타리가 되어 영원히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검모잠은 안승을 고구려 3경 중은 한성(지금의 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추대하게 됩니다.
이에 신라는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봉하는 명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금마저에 머물게 됩니다.
하지만 고구려왕 안승은 당나라의 계속되는 압박을 받게 되자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투항하게 됩니다.
보덕국은 존재헀지만, 평양성 인근에서는 고구려부흥운동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나당전쟁의 일부인 석문전투가 있습니다. 신라와 고구려 부흥 세력이 손을 잡고 당나라의 전투입니다.
하지만, 이때 고구려부흥세력은 모두 소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라군또한 패배를 하게 됩니다.
이로써 지금의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부흥운동이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요동벌판에서는 걸걸중상(대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이 거란의 반란을 틈타 고구려 유민을 탈출시키고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대를 이기고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여 고구려의 뒤를 이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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