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백제 부흥운동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현재 수도권, 충청, 전라도 지역을 다스린 나라였습니다.
시조는 온조왕이였으며, 고구려 건국자인 동명성왕 혹은 우태의 아들이자, 소서노의 아들입니다.
약 678년 동안 한반도 서남쪽을 지배한 나라였습니다.
백제 멸망은 링크를 통해서 보면 됩니다.
https://malrrr.tistory.com/135
왜국이 있던 백제 왕자 부여풍 다시 백제로 돌아오다.
백제가 나당동맹군에게 멸망하고, 백제의 잔존 세력들이 부흥 운동을 시도하게 됩니다.
복신과 도침 등은 왜나라에 있던 백제의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하여 당나라와 맞서 싸우게 됩니다.
(당시
백제는 수도인 웅진성, 사비성만 함락을 당했을 뿐, 지방 군은 건재한 상황이었습니다.
임존성, 주류성을 근거지로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하지만, 복신과 도침은 서로 세권 다툼이 있어서 결국 내분이 일어났고, 도침은 복신에게 살해를 당하였고, 복신이 부여풍을 죽이려 하자 부여풍이 복신을 살해하였습니다.
결국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한 복신, 도침은 살해당합니다.
서로 한 마음이 되어서 다시 백제를 일으켜도 모자랄 판에 세력다툼으로 전력을 낭비한 꼴입니다.
그러다가, 왜군의 3만여 명 병력을 지원받게 됩니다.
백제가 멸망을 했는데, 왜 일본은 3만여 명의 지원군을 보내줬을까요? (이 글의 주제는 다음번에 소개하겠습니다.)
백제부흥 세력은 왜의 지원을 받아 약 백강에서 전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나라의 장수는 백제의 왕자 부여풍의 친형 부여융이었습니다.
고구려 멸망 때와 똑같습니다. 의자왕의 부여융은 당나라에 항복을 하였고, 백제부흥운동이 시작되고 백제의 왕자가 당나라 군대를 끌고 와서 백제부흥군을 죽입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이 당나라에 투항하고, 본인이 당나라 군대를 끌고와서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4차례의 백강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였으나 백제부흥군과 왜군은 크레 패하였고, 결국 주류성도 나당연합군에게 함락을 당합니다. 부여풍은 고구려로 망명하였고, 왜군 또한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됩니다.
이에 흑치상지는 당나라에 투항하게 되어, 백제부흥 세력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고구려도 멸망하게 되고, 통일신라도 서서히 멸망의 조짐으로 가고 있던 중에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후백 제을 세운 견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등장합니다. 고향을 떠나 서라벌에서 군인이 되었고, 경력을 쌓고 서남해에 부임하였습니다.
부임 후 신라의 조정 기강이 이미 기울기 시작했고, 견훤은 야망을 품게 됩니다.
서남해에서 군사를 모아, 무진주(광주광역시)를 습격하여 무진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속 세력을 늘려나가 완산주(전북 전주)에 와서 이러한 말을 하게 됩니다.
삼국사기 열전 제10 견훤
"내가 삼국의 시초를 찾아보니, 마한(훗날 백제)이 먼저 일어나고 후에 혁거세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진한(훗날 신라), 변한(훗날 가야)은 그를 따라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에 백제는 금마산에서 개국하여 600여 년이 되었고, 당나라 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소정방 장군을 보내 군사 13만을 하여금, 신라의 김유신과 흙먼지를 날리며 황산을 거쳐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완선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
기록에는 그렇게 있습니다.
그리고 후백제를 건국하여 북쪽의 후 고구려(궁예)와 치열한 혈전을 하게 됩니다.
신라는 어떻게 멸망했을까? https://malrrr.tistory.com/137
링크를 들어가면 후백제 멸망이 있습니다.
후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백제부흥운동은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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